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86) 대화를 위한 침묵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
입력일 2021-09-14 수정일 2021-09-14 발행일 2021-09-19 제 326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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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영성 운동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는 것

포콜라레 영성을 일치의 영성 혹은 친교의 영성이라고 한다. 친교를 위해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하지 않고는 서로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면 사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의 장은 창설자인 끼아라 루빅을 통해 여러 분야로 넓혀져 왔을 뿐 아니라 회원들 역시 계속해 이어 가고 있다.

특별히 이 대화를 다섯 가지 영역에서 추구하고 있는데, 가톨릭교회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 교회들과, 다른 종교들과, 종교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선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과 하는 대화가 있고, 마지막으로 문화와의 대화가 있다. 마리아 사업회에는 이런 대화들을 구체화하는 대화 채널이 있고 그 채널을 운영하며 헌신하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포콜라레운동 회원이라면 기본적으로 또한 전방위적으로 이웃과 대화하면서 친교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한다. 우리 이웃들이 바로 가톨릭 신자들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이고, 이웃 종교인들이며, 선의를 지닌 사람들이고, 또한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998년 5월 30일 성령 강림 대축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 함께 교회 안 평신도 운동과 공동체에 속한 숱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단체 대표자들만 해도 229명이었다고 한다. 교황님께서는 교회 영성 운동들을 향해 “교회가 짊어진 막중한 과제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답”이라고 하시며, “모든 사람을 복음화하십시오. 교회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습니다”라고 축복하셨다. 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되신 라칭거 추기경님께서는 10여 년간 교회 운동들을 연구하신 보고서에서 “자신의 운동만을 절대화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몇몇 운동의 대표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말씀드리는 시간에 단상에 오른 끼아라는 “저희는 교회가 여러 운동 사이에 가득한 친교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교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저희는 이 일치를 충만히 실현시키기 위해 저희의 힘을 다 바칠 것을 약속드립니다”하고 말씀드렸다.

포콜라레운동에서는 매년 휴가철을 맞아 누구든 참석할 수 있는 마리아폴리를 연다. 보통 1000여 명이 모이면서도 질서 정연하고 따뜻하고 기쁨이 넘치는 곳이다. 어느 해 여름 거기서 한 사람을 만났다. 신앙적으로나 인간적 소양으로 보아서도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호감이 갔다. 처음 마리아폴리에 왔다고 했는데, 그것도 우연히 포콜라레를 알게 돼 여러 경로로 수소문하다가 마침 마리아폴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누구의 권유도 없이 스스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여기가 지상 천국 같다고 하며 아주 기뻐했다.

그의 적극성이 또 나의 마음을 끌었다. 언니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는 그에게 관심이 갔고, 그가 계속해 마리아사업회와 연결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휴가철이 끝나 곳곳에서 모임이 시작되자, 나는 일일이 그에게 모임 소식을 알려 주며 어느 모임에든 참석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마리아폴리에서 그렇게 기뻐하던 그가 정작 후속 모임에는 전혀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좀 의아하기도 했고 그에게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자주 기도 중에 그를 기억하면서 그에게 포콜라레 영성으로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느 날 드디어 그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사실은 자신이 다른 영성 운동에 이미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힘든 시기에 마리아폴리에 갈 수 있어서 정말 기뻤고 덕분에 힘을 얻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맡은 책임을 내려놓을 수가 없노라고 했다. 순간 그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인간적인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나는 즉시 알겠다고 답을 보냈고, 그 이후로는 매달 복음 한 구절에 해설을 곁들인 ‘생활말씀’ 영상만 아무 말 없이 보내고 있다. 그가 그 영성 운동에서도 기쁨을 찾을 수 있기를, 나의 침묵이 교회 안 영성 운동들이 서로 존중하는 참다운 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