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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한국가톨릭학술상 특집] 번역상 「칠극」 번역한 정민 교수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1-10-05 수정일 2021-10-05 발행일 2021-10-10 제 326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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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도록 하면서도 원문 뜻 살리려 최선”
신앙인들을 위한 지침서이자
인격 완성의 길 전하는 수양서
서양인이 쓴 17세기 한문서라
일반 번역보다 큰 노력 기울여

번역상 수상자 정민 교수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고대 철학자와 지혜자, 교부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읽고 신앙인으로서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작업했다”면서 “신앙선조들이 신앙지침서로 사용한 이 책이 학술, 인문교양 영역에서도 널리 읽힐 수 있도록 번역했다”고 말한다.

“「칠극」은 한국교회사에서 잊을 수 없는 책이고, 조선 사회의 저변을 훑고 지나간 상당히 영향력 있는 책입니다. 신앙선조들이 신앙지침서로 사용한 이 책이 학술, 인문교양 영역에서도 널리 읽힐 수 있도록 번역했습니다.”

제25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번역상 수상작 「칠극」을 번역한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정민(베르나르도·61) 교수는 “학자로서 「칠극」의 중요성과 가치를 생각하며 전념한 작업을 가톨릭교회에서도 소중하게 생각해주신 것 같아 크게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며 “귀한 상을 받게 돼 대단히 영광스럽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정 교수는 10년 이상 다산 정약용에 관해 연구해온 한국한문학 학자다. 다산과 천주교의 연관성에 관해 연구하던 정 교수는 다산이 읽었다는 「칠극」에 흥미를 느끼고 원전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칠극」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정 교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글에서 수없이 나타나던 비유와 표현이 「칠극」에서 인용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가 아닌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 등의 글에도 「칠극」의 흔적이 있었다.

정 교수는 “「칠극」은 종교를 앞세우지 않고 인간이 어떻게 완성된 인격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말하는 수양서이자 서양 지식의 총화로, 「논어」와 「맹자」를 읽듯 읽을 수 있어 조선인들에게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라며 “명징한 연역적 구성과 서양식 비유에 익숙지 않은 동양인들에게 강력하고 참신하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번역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단 분량이 방대했다. 「칠극」은 총 8만2590자의 한자로 쓰였다. 「논어」의 7배, 「맹자」의 2.7배 분량에 달하는 책이다. 게다가 서양 선교사가 한문으로 표현을 하다 보니 기존의 한문 표현과 달리 문장 안에 다른 문장이 들어있는 포유복문 형태나 병렬형 문장이 나타났고, 서양음을 중국어로 표기하는 방식도 현대와 큰 차이가 있어 일반 한문번역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정 교수는 현대 한국인들이 읽기 쉽도록 하면서도 연구자들에게 기준 텍스트가 될 수 있도록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렸다. 또 「칠극」과 저자인 판토하 신부, 「칠극」을 간추린 「칠극진흠」에 관한 국내 뿐 아니라 중국의 연구 자료를 수집해 주석과 해제를 달아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정 교수는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고대 철학자와 지혜자, 교부들의 주옥같은 말씀을 읽고 신앙인으로서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작업했다”면서 “「칠극」의 한 장(章), 한 장이 신앙인으로서 바른 길을 가는지 돌아보는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를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정민 교수는…

한양대에서 한국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 저서로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등이 있고, 「석주집」, 「기봉집」 등을 번역했다.

또 「다산선생지식경영법」, 「다산의 제자 교육법」, 「다산어록청상」, 「파란」 등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을 다수 펴냈다.

■ 수상작 「칠극」

판토하 신부 지음/정민 옮김/700쪽/3만2000원/김영사

「칠극」은 1614년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 신부(Diego de Pantoja, 1571~1618)가 중국 베이징에서 한문으로 펴낸 천주교 수양서다. 당시 총 7권으로 간행된 이 책은 각 권마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죄의 근원이 되는 죄로 여긴 칠죄종을 덕(德)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서양과 동양, 성경의 가르침과 비유를 풍부하게 인용하며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신앙선조들이 널리 읽던 책일 뿐 아니라, 중국과 조선, 일본 등 동아시아 지식인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서학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