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이 시대의 순교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1-11-09 수정일 2021-11-09 발행일 2021-11-14 제 326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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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시간을 내어 인근 순교성지를 다녀올 때가 있습니다. 다녀오는 이유는 흐트러졌던 마음을 가다듬고 이러저러한 생각을 정리해 보기 위함입니다. 순교성지에 다녀올 때면 항상 떠올려 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의 순교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점입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박해 당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사문난적이란 유교이념에 반대되는 사람이나 사상을 비난하는 용어입니다. 성리학이 국시가 됐던 조선에서는 반역자에 준하는 역적 취급을 당했습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자로 몰린 것입니다.

신앙선조들이 이런 죄목에도 순교를 감내하며 지키고자 하셨던 신앙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유, 평등, 평화, 정의라고 하는 최고선과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하는 공동선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 아래 한 형제로서 차별 없이 모두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함일 것입니다.

얼마 전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면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교황님께 다시 ‘북한 방문’을 요청드렸습니다. 방문기간 중에는 로마 성 이냐시오성당에서 DMZ 철거과정 중 수거된 철조망을 이용해 만든 십자가를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교황님께는 관계개선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신 것이고 G20 정상회담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호소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각종 모욕과 중상, 그리고 비난과 비방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사문난적처럼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그러한 인식들을 무릅쓰고 최고선과 공동선을 지키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일들이 우리가 오늘날 해야 할 순교의 모습일 것입니다.

성경 속의 욥은 의로운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았음에도 사탄의 시험과 계략으로 질병과 재산 탕진, 그리고 자녀들의 불행까지 겪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욥은 하느님에 대한 의로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의로움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며 거짓말로 중상을 당하고 사악한 말로 비방을 받는 이들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를 위한 발걸음에 비난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한반도의 평화는 우리가 이뤄야 할 과제이고 지켜야 할 최고선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미카 4,3)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도 오늘날의 순교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