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08) 말벌과 신부님 마음(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11-09 수정일 2021-11-10 발행일 2021-11-14 제 3269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사나워진 말벌들이 사라진 후 피해 상황을 봤더니, 동창 신부님은 도망가는 순간 ‘피에타 성상’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를 머리로 들이받아 두피가 긁혔고, 오른쪽 무릎이 말벌침에 쏘였습니다. 아침부터 폭풍 잔소리를 할 때는 ‘남의 속도 모르는 동창 신부’라고 야속했는데, 말벌에 쏘이고 두피가 긁혀 피가 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에 작업을 멈추고, 나는 동창 신부님을 데리고 병원에 갔고, 거기서 신부님은 주사를 맞았습니다. 사나운 말벌에 쏘이면 아플 텐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 동창 신부님! 그 앞에서 나 역시 백신 주사를 맞은 팔의 근육통이 왔지만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성지로 돌아와 작업을 마무리 했고, 주변 정리와 작업 도구를 챙긴 다음에 공소로 출발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운전하면서 곁눈질로 동창 신부님 상태를 파악했더니 신부님은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서울에서 이 멀리까지 와서 뭔 고생을 사서하나,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말벌에 쏘인 부위는 또 얼마나 아플까!’ 별별 생각을 하다가 동창 신부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일 반드시 말벌집을 초토화 시키고 말벌을 잡을 테니 걱정 마. 말벌에 쏘인 무릎이랑 두피 긁힌 복수를 내가 해 줄게.”

나의 말을 듣던 동창 신부님은 한심한 듯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석진아. 우리가 괜히 잘 지내고 있는 말벌 집을 건드린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말벌들이 지금 많이 화가 나 있을 텐데, 내일 부활 동산 정리 작업을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말벌집 제거는 우리가 못해. 내일 119 직원들이 출근하는 시간 즈음에 전화를 해 봐.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 성지에 말벌집이 있고, 성지에 온 사람이 그 말벌에게 쏘여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그러면 그분들이 알아서 해 줄거야. 오늘 하루, 작업은 잘한 것 같은데, 마무리가 좀 그러네. 암튼 말벌에게도 미안하기도 하고.”

“말벌에 쏘인 곳은 안 아파?”

“처음 쏘일 때는 무지 따끔거렸는데, 시간이 지나니 가라앉더라. 그리고 무릎만 쏘인 줄 알았는데, 팔도 쏘인 것 같아. 그런데 무릎이 아파서 그랬는지 팔에 쏘인 건 모기에게 물린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튼 씻고 일찍 자야겠다.”

“그게 좋겠네. 어떤 사람들은 벌침도 맞으러 다니는데 말벌침 효과는 얼마나 좋을까.”

“너는 말벌침보다 백신 주사를 잘 맞았으니, 벌침이나 주사나 다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내일 열심히 일이나 하자.”

그 다음 날 아침. 말벌침을 맞은 동창 신부님은 더욱 쌩쌩한 얼굴을 하였고, 백신 주사를 맞은 나는 ‘밤새 누군가에게 얻어맞는 듯’ 온 몸이 쑤셨습니다. 말벌침을 맞은 신부님은 말벌 걱정을 하면서도 하루 종일 전정 작업을 했고, 백신 주사를 맞은 나는 성지 사무실 맨바닥에 드러누워 온종일 비몽사몽 했습니다. 그 이후 동창 신부님과 나, 그리고 함께 사는 신부님은 일주일 내내 부활 동산을 비롯하여, 성지 주차장 근처의 철쭉과 배롱나무, 그리고 찻길 방향의 소나무 등을 깔끔하게 전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다 흘렀고 지금은 동창 신부님이 가꾸어 놓은 성지 주변을 돌아봅니다. 깨끗하고 정리된 부활 동산과 성지를 보면서 말벌침을 선물로 받고 간 동창 신부님의 안부를 이 바람에 실어 물어봅니다. 말벌에 쏘이고도 말벌만 걱정하는 동창 신부님을 생각하면서, 문득 ‘나무와 꽃’, 아니 자연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은 자연을 보며 누리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연 곁에 조심히 자신의 마음을 겸손하게 두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말벌들이 성지 어디에다 집을 짓고 있을까, 그게 은근히 걱정이 되는 모자란 사람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