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609) 청개구리와 군인정신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11-16 수정일 2021-11-16 발행일 2021-11-21 제 327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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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1박2일 일정으로 어떤 신학생이 공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전역한 지 이삼 년쯤 지난 듯 한데도 외모나 말투, 행동에서 군인 티(?)가 나는 신학생이었습니다. 그 신학생과 나는 동네 갯벌로 가서 맑은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겼는데, 산책 도중 신학생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는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재미있었고, 특수 훈련을 나가거나 전술 훈련을 할 때면 신바람이 날 정도였답니다. 그러다 전역하고 신학교에 복학했는데, 군인 정신(?) 덕분에 신학교 생활은 편했지만 때론 자신의 성소가 ‘군인’이 아닐까 고민을 했다는 겁니다. 우리는 ‘꿈’과 ‘성소’에 대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화중에 그 신학생이 말했습니다.

“군 생활이 즐겁고 재미있게 느껴지다 보니, 직업군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사실 신학생 시절 ‘성소’ 갈등은 정상적이죠. 가끔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새롭게 생기면 힘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꿈’ 조차 당신 섭리의 도구로 쓰실 때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이라도 군대에 다시 들어갈 수는 있나요?”

“특수부대 같은 곳은 가능성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적인 ‘꿈’이 다른 것 같아요. 그토록 사제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은 다른 길을 가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려고 했던 사람이 결국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은 사제의 길로 가는 경우도 있고. 암튼 좋은 고민을 잘 해 보셔요. 단, 기도하는 마음은 늘 잊지 말고.”

우리는 공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고, 그 후 신학생은 성지 컨테이너에서 자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처럼 신학생과 ‘성소’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또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되었습니다. ‘성소’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하느님 앞에 부끄럽고, 부족한 나를 부르시어 은총으로 이끌어주신 주님께 그저 감사하고….

다음 날 아침,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방으로 돌아와 수도복을 갈아입는데, 함께 살고 있는 신부님이 방에 찾아왔습니다.

“강 신부님, 외부 화장실 변기 뚜껑이 깨져서, 새 것을 사러 오전에 고창 읍내에 다녀올게요.”

“아니, 변기 뚜껑이 왜?”

“어제 밤에 신학생이 화장실에서 용변 보다가 그만 변기 뚜껑을.”

“아니, 화장실에서 용변만 보면 되지, 무슨 변기 뚜껑을 깰 일이 있나요?”

“그게 이유인 즉, 신학생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물을 내렸는데 물이 안 나오는 것 같아 혹시 물이 없나 싶어서 변기 뚜껑을 여는데, 순간 그 안에 있던 청개구리가 튀어나왔대요. 그래서 신학생이 깜짝 놀라 붙잡고 있던 변기 뚜껑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아니, 특수부대에서 훈련받고 군인 정신이 몸에 베인 듯 하다며 수도 성소에 대해 고민하던 신학생이, 공소를 놀이터 마냥 생각하며 놀고 있는 청개구리, 때론 내 방까지 들어와 방바닥을 펄쩍펄쩍 뛰어 노는 청개구리를 보고 놀랐다니, 그래서 돈 만 원이 귀한 이곳에서, 귀한 변기 뚜껑을 깨다니!

그날 오전, 신학생과 나는 깨진 변기 뚜껑을 앞에 놓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해서 머리만 긁던 신학생에게 나는 특수부대 생활을 자랑하던 사람이 어떻게 청개구리를 보고 놀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신학생은 평소 겁은 없는데 개구리를 보면 징그러워 도망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신학생에게 용맹한 군인보다 개구리만 봐도 놀랄 수 있는 마음 따스한 사제의 길이 낫겠다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나의 말에 수긍을 하는 신학생을 보며, 문득 청개구리가 신학생의 성소를 잘 지켜준 듯하여 헛웃음이 났습니다. 허허허!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