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오한나

오한나(한나·제1대리구 죽전1동본당)
입력일 2021-11-24 수정일 2021-12-08 발행일 2021-11-28 제 327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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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마당에 고구마 난로가 등장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반짝반짝 전구들이 머리 위를 가로질러 성모상 앞까지 길게 늘어지고 성당 외벽 벽시계에도 환하게 불이 켜진 것이 보입니다. 시곗바늘에 불이 들어온 모습이 새삼 신기합니다. 저절로 발걸음이 성모상 앞으로 향했습니다.

우리 성당 앞마당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여느 명소 캠핑장보다 더 ‘감성’ 돋는 공간입니다. 성모상을 비추는 조명까지 켜지면 절로 마음이 몽글해지며 눈을 감게 되는 기도 명당입니다. 정말 그랬던 곳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지난 십수 개월 동안 이 아름다운 마당이 제 눈에는 온통 회색빛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봉사자입니다. 대면·비대면을 오가던 어린이 미사에는 빈자리가 많고, 마주치는 몇몇 아이들과는 대화조차 조심해야 하고, 온라인 교리에다, 매주 동그라미가 줄어가는 출석부를 바라보며 마음이 조급해지는 초등부 교사입니다.

이제 어린이 미사에 좀 더 많은 친구가 함께해도 된다는 소식에, 또 은총잔치도 할 수 있고 미사 중 성가를 불러도 된다는 소식에 그간 맘속에 묻혔던 이런저런 속상함이 사라졌는지 눈앞에 예쁜 등불들이 다시 보입니다.

그런데 확실히 ‘다시’ 본 게 맞습니다. 며칠 사이 달라진 제 태도를 보니 그렇습니다. 분명 지난주까지는 ‘그 많던 어린이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온라인 교리 참여는 왜 이렇게 저조한 것인지’ 푸념하고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어린이 미사에 아이들이 삼십 명이나 나왔다’고, ‘그 지루한 교리에 꾸준히 매주 열심히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기특하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보니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만큼 밖에 남은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매주 미사에 참례하고 봉사를 하고, 교리에 참여하며 최선을 다하는 어린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던 것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묵묵히 주일학교를 지키며 다시 돌아올 친구들의 마중물이 되어주는 감사한 아이들과 늘 곁에 머물러 계셨을 예수님을 생각하니 제가 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마침 아주 특별한 계기가 아니었음에도 제 시선을 빛나는 등으로, 붉고 푸른 벽시계로 환한 성모상 앞으로 옮겨주셨습니다. 불평으로 가득하던 제 마음을, 온통 회색 같던 제 눈앞을 감사로 채워주셨습니다. 어린이 미사 참례 후 아이들이 이 아름다운 마당에 모두 모여 군고구마를 먹으며, 구유를 경배하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대림 기간 한 주 한 주 빛을 밝히며, 성당 앞마당에 가득 달린 등불들을 보고 발걸음을 옮길 아이들과 빛으로 오실 아기 예수님을 눈 크게 뜨고 기다리겠습니다.

오한나(한나·제1대리구 죽전1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