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갈곡리의 두 줄기 빛 / 이명옥

이명옥(마리아) 시인,
입력일 2021-12-07 수정일 2021-12-07 발행일 2021-12-12 제 327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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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의정부교구 성지인 갈곡리성당을 다녀왔습니다. 안온한 전원의 분위기를 오롯이 안고 있는 이곳 갈곡리에 늘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이곳 성지가 내 신앙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갈곡리는 저의 외삼촌인 김치호 베네딕토 신부님과 이모인 김정숙 마리안나 수녀님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두 분은 6.25 동란이 발발하기 전부터 함경도와 황해도 일원에서 주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북한 공산당에 핍박을 받으시고 1950년 10월 5일과 17일에 끝내 순교하셨습니다. 현재 두 분은 시복 과정에 있습니다.

12살 어린 나이에 혜화동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제화공으로 입회한 외삼촌은 엄격한 수도 규칙과 수도생활에 잘 적응해 유능한 구두공이 되었으며 수도회가 덕원으로 이전하면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성직 수도자가 되신 외삼촌은 라틴어와 독일어에 능했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바이올린을 잘 연주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전해 들었습니다.

특히 수련 시절에는 방학 때마다 고향을 찾아 마을사람들을 위해 외삼촌은 아름다운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였고, 마을사람들이 아주 좋아하셨다고 어머니는 자랑스레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온화한 성품의 이모 수녀님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하여 순교하실 때까지 매화동성당 봉삼유치원에서 교육 사도직 소임을 충실히 하셨습니다. 이제는 외삼촌과 이모님 이야기를 해 주실, 오로지 내 편인 어머니도 계시지 않으니 인간적인 슬픔은 구름처럼 부풀지만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심을 믿기에 위로가 됩니다.

갈곡리성당 입구에 세워진 두 분의 조형물을 대하니 생전에 외삼촌과 이모님을 봬온 듯 반가움에 가슴이 뜁니다. 자신의 신앙을 순교로 열매 맺어 천상영복을 누리고 계실 숭고한 모습을 그리니 감사와 기쁨의 눈물이 번집니다. 그러나 두 분의 신앙과 순교를 우러를 때마다 터럭처럼 보잘것없는 제 믿음이 잡혀 북받치는 울음마저 부끄러웠습니다. 순교로 지킨 주님을 향한 그 믿음이 향기로운 기도가 되어 무딘 제 영혼에 은총이 소낙비같이 쏟아져 내립니다.

전지전능한 부활을 믿기에 이따금 새 기운에 들어올려지지만, 입을 열어 간절히 간구한들 두 분의 맑고 아름다운 믿음의 행적을 따를 수 없을 것 같아 오래 오래 미망(迷妄)에 갇힙니다.

해질녘,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귀한 시간에 먼저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제 겹겹의 얼룩을 지워 주십사 간구하며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신 자랑스러운 순교자 외삼촌 신부님과 이모 수녀님을 공경하며 또 새롭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2)

갈곡리를 걸으며 제가 쓴 시를 두 분께 바칩니다.

갈곡리의 두 줄기 빛

-내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하늘 문과 맞닿아 있는/ 갈곡리 성지/ 성당의 삼종이/ 이승의 소리가 아닌 듯/ 시류에 떠밀린 내 지친 영혼을 위무합니다

이때다 싶게 새 한 마리/ 적요에 잠긴 사위의 한 자락을 들어 올리듯/ 수직으로 날아오르고/ 키 큰 전나무/ 우련우련 가지 흔들며 수인사를 건넬 때/ 나는 부복하듯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순례자의 길을 걷습니다

초록비 듣는 바람결에/ 희망의 전조가 온몸에 흐르자/ 두 분의 아름다운 순교/ 내가 따를 순종의 길 위로/ 아프게 이어집니다

오, 키리에/ 나는 더운 눈물을 참으며/ 성호를 긋습니다

이명옥(마리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