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생활 속 영성 이야기] (98) 이제야 귀를 열다

입력일 2021-12-15 수정일 2021-12-15 발행일 2021-12-19 제 327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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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은 다를지라도 형제애를 위한 일이라면

얼마 전 휴대폰에 우리 지방 문화 재단 홍보 메시지가 떴다. 워낙 여러 소식이 자주 오기에 대충 훑어보고 마는데, 그날따라 ‘문화 예술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라고 적힌 제목이 눈에 띄었다. 문화 예술과 기후위기를 어떻게 연결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기후위기라는 주제를 외면하기도 그렇고 해서, 참석하겠다고 신청한 뒤 며칠을 기다렸다. 팬데믹 시기라 소속 단체 모임조차 흘려보내는 편인데, 아무튼 이번 걸음은 혼잣속으로도 신통한 일이었다.

내 주위에는 종교인들이 많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특별히 비종교인과 종교 때문에 갈등을 겪은 일도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조금만 눈을 돌리면, 내가 할 수 있고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을 만한 일들이 늘 많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포콜라레운동에서 시도하는 다섯 대화 채널 중 네 번째인, ‘종교적 신념 외의 선의를 지닌 이들과 하는 대화’를 굳이 내 몫이라 여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 달에 하루 열리는 ‘행복마을’이 있다. 북한이탈주민과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무료 진료와 미용실과 한글 교실, 쌀과 생필품 및 옷가지 등을 저렴하게 파는 마켓, 어린이 돌보기와 한국 놀이 체험 등을 펼치는 장이다. 새 삶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느끼는 이웃들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고자 2003년 마리아 사업회의 한 부문인 ‘새인류운동’에서 시작했는데, 회원 외에도 꾸준히 참여하는 미용사, 학부모 봉사단, 학생 봉사단 등 자원봉사자들의 역할 또한 참으로 소중하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활동을 통한 네 번째 대화가 아닐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대화를 열어 갈 만한 기회가 온 것일까. 하필 그날따라 그 안내문이 내 눈길을 끌었으니…. 아무튼 온라인으로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모른 채 적은 인원만 초대한 현장 참여 신청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간을 내어 찾아갔다.

따뜻하고 아담하게 차려진 행사장에는 잘 조직된 듯 보이는 관계자들이 안내와 준비를 하고 있었고, 행사 기록을 맡은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거나, 유튜브 중계를 위한 영상 촬영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입장하며 받은 인쇄물을 보니 주한영국문화원의 협력으로 실시간 영국에서 참석하는 패널도 있었다.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린 곳이 영국 글래스고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튼 우리 지방에서 하는 간단한 행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포럼이 시작되자 발제자는 “인류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기후 변화와 환경 이슈에 대응하는 것은 창의 인력들, 즉 예술가들의 당연한 사회적 책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제 예술이 지구촌 환경 보호를 위한 참여와 실천적 매개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하고 포럼 개최의 의미를 짚었다. 나에게 익숙한, 기후위기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보다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그레타 툰베리의 온몸이 입 부위까지 물속에 잠겨 있는 포스터가 큰 반향을 일으키는 곳이었는데, 이어서 진행된 사례 발표자들의 진지하고 결의에 찬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미술 전시회로 발생하는 환경 문제를 시민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전시로 고백한 미술가,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자연을 무대로 연주회를 열고 연주가들과 연대해 여행자들이 남기고 간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거하는 것으로 관람료를 대신하게 한 섬 주민의 아이디어, 화가들과 함께 산복도로 지역 아흔일곱 채 가옥 지붕을 열 차단 페인트로 칠해 표면 온도와 실내 온도를 감소시켰다는 활동가 등…. 그날, 우리의 ‘의식’을 일깨우고 ‘연대’해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옮긴다면 탄소 제로 시대도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았기에 힘찬 박수로 감사와 격려를 표했다. 내게는 이제 막 귀를 여는 자리에 불과했지만, 보편 형제애를 위한 일이라면 가능한 한 참여해 대화하고 연대함으로써 힘을 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기회도 되었다.

장정애(마리아고레띠·마리아 사업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