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좀 비뚤어지세요! / 임현택 신부

임현택 신부(유학)
입력일 2021-12-22 수정일 2021-12-22 발행일 2021-12-25 제 327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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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쯤, 한 후배 신부님이 저에게 캘리그래피를 배워볼 생각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신학생 때부터 캘리그래피를 해왔고, 주변 신학생들에게 성경 구절을 써서 선물해주는 것을 보며 “나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글씨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게 다가왔고, 성경 말씀도 멋드러지게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느꼈었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으로, “응, 배워볼래~”라고 답했고,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붓펜을 잡고 획을 긋는 것부터 시작해서 예쁘게 구도 잡힌 글자를 따라 쓰면서 “나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라는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지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한 주 한 주 수업을 듣고, 글자를 쓰면서 저의 성격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쉽게 말하면 ‘완벽주의’의 성향이 꽤 있어서 글자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어느 정도 규칙적이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예를 들어 문서작업을 할 때, 왼쪽 여백이 3이라고 하면, 오른쪽 여백도 딱 3으로 맞춰야 하는 거죠. 뭔가를 정리할 때도, 간격이 일정해야 하고 절대 비뚤어지면 안 됩니다.

답답하시죠? 하하하. 저도 저의 이런 성격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이런 성격이 캘리그래피를 하는데 부딪치더라고요.

어느 수업 날 글씨를 쓰고 있는데 선생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신부님, 글자가 약간 삐뚤빼뚤해야 예뻐요. 좀 비뚤어지세요~.”

이 말씀을 듣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와 선생님! 저에게 큰 도전이 되겠는데요?”

그렇게 ‘삐뚤빼뚤’을 연습하면서 저 자신을 많이 바라보게 되었고, 불규칙함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를 그릴 때도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나뭇잎을, 전체가 풍성한 게 좋다고 빽빽하게 그려놓으면 예쁘지가 않더라고요. 어느 부분은 풍성하고, 어느 부분은 조금 비어있게 그려야 그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예쁘다”고 표현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저는 캘리그래피를 배우면서 삶의 법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지닌 신앙도 배우게 되었고요. 그래서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을 규격화시키지 않으셨다는 것.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우리가 생각하기에) 수많은 실패와 수많은 성공을 경험했고, 그 삐뚤빼뚤함이 나에게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그 엉성한 곳을 내가 억지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알아주시고 내 삶의 또 다른 부분에서 더 풍성하게 이끌어주시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임현택 신부(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