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94)교황청 직원들에게 화가 난 교황/ 로버트 미켄스

입력일 2022-01-04 수정일 2022-01-04 발행일 2022-01-09 제 327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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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강조하며 형제애 촉구… 오만과 성직중심주의 경고
시노드적 교회 실현 위해 모든 이들 의견 경청 강조

지난달 말,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고위 관리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성탄 인사를 통해 교황청 직원들의 형제애를 크게 나누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교황은 추기경들과 주교들에게 형제적 충고를 전했다.

교황은 30여 분 동안 진행한 연설에서 1인칭 복수형 대명사를 사용하며 오만과 완고함, 분열, 성직중심주의에 대해 경고했다. 교황은 “성탄의 의미를 표현하는데 ‘겸손’이라는 말이 가장 유용할 것”이라면서 “우리 시대는 겸손을 잊어버렸거나 하나의 도덕적 형태로 밀쳐버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교황청에서 16세기 관료체제라는 구시대적인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일갈했다.

교황은 “성탄은 우리에게 과감하게 갑옷, 즉 과시와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나아만의 겸손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옷, 즉 특권과 사회적 지위를 벗으면 우리는 그저 치유가 필요한 한센병 환자”라고 말했다. 나아만은 아람(현 시리아)의 장군이었지만 한센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유다인 하녀를 통해 예언자 엘리사를 알게 됐고, 엘리사의 지시에 겸손하게 따르며 요르단강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해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이어 교황은 교황청 측근들에게 ‘영적 세속화’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다른 유혹과는 달리 영적 세속화는 정체를 알아내기 힘들다”면서 “우리의 역할, 전례, 교의, 신심활동 안에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교황은 교회 쇄신에 대한 자신의 청사진을 담아 2013년 발표한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인용하며, ‘알량한 권력에 만족하는 자들의 허영’을 비난하고 이들이 “바깥에서 지시만 내리는 영적 지도자나 현명한 목자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했다.(96항 참조)

교황은 교황청 관리들에게 겸손 안에 머물며 자신의 허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겸손해지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우리는 모두 겸손의 반대말이 오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말라키 예언자의 말을 인용해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될 것”(말라 3,19)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겸손한 이들은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를 염려한다”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기억하는 겸손한 이들은 어떻게 앞을 내다보고 어디에 가지를 뻗을지 안다”고 말했다. 반면 “오만한 이들은 새로운 것을 통제하지 못해 이를 두려워하고, 그저 단순하게 반복하며 굳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교황의 용어와 이미지 선택은 교회의 일상과 통치 방식 안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수행하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언급한 것처럼 ‘건강한 분권’이 필요하며, 교황청 부서들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하고 휘둘렀던 권력의 일부 혹은 많은 부분을 내려놓아야 한다.

교황은 이날 시노드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이들을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겸손, 특히 성직자들의 겸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성직중심주의는 ‘유혹의 저수지’와 같아서 일상 속에서 우리 안에 퍼지고, 주님께서 일부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처럼 여겨 다른 이들은 그저 듣고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경고했다.

이런 사고방식은 시노달리타스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교황은 이러한 성직중심주의를 교황청 안에서 뿌리 뽑지 않으면 이제 시작하려는 시노드 여정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황은 세계주교시노드를 시작하며 참여와 친교, 사명을 강조했으며, 교회의 중심인 교황청이 더욱 겸손해지기 위한 필수요소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참여’를 통해 교황청이 ‘공동책임의 형식’을 받아들여 하급 직원들이 고위층이 고안한 계획이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교황청 직원들이 업무를 초월해 주님을 중심에 두고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관계를 맺을 때 친교를 이룰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리와 분열, 적의가 계속되며 직원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는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교황은 “다양성은 성령의 선물”이라면서 친교를 ‘획일성’의 의미로만 받아들일 때 “우리 가운데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힘”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교황청 직원들이 자신들의 사명을 받아들일 때 교황청이 고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교황이 말한 사명은 “언제나 가난한 이를 위한 것”이다. 교황은 “이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빵뿐만 아니라 의미에 굶주린 이들도 모두 가난한 이들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교황청 직원들이 “성탄과 구유가 보여준 겸손, 스승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닦아준 겸손으로 복음화돼야 한다”면서 “오직 봉사를 통해서만 우리는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겸손은 신앙생활, 영적 생활, 성화를 위한 주요 조건이며, 바로 성탄이 주는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