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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참회와 속죄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1-11 수정일 2022-01-11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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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봉헌된 성당이다. 임진강 너머로 북한 마을이 보이는 통일동산에 성당이 세워졌을 때, ‘참회와 속죄’라는 이름을 두고 ‘우리’가 왜 참회해야 하느냐는 질문들도 있었다.

하지만, 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의 예수성심대성당을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서로 많은 형제들을 죽인 죄를 참회하는 뜻에서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 지었던 것처럼, ‘참회와속죄의성당’을 통해 1950~1953년 6ㆍ25전쟁 당시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인 죄를 속죄하고 보속하자”고 말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 행위의 ‘환원불가능성’이라는 제약을 넘어서는 힘으로 용서를 설명한다. 아렌트에게 예수님은 인류 역사 안에서 용서의 역할을 발견한 사람이었다. ‘하느님만이 용서하는 힘을 가진다’는 기존의 주장에 대항한 예수님이 하느님의 능력을 통해서 인간도 용서할 수 있으며, 보복이라는 무한한 반복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용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유다인으로서 ‘홀로코스트’(대학살)의 시대를 살았던 아렌트가 성경에서 본 것은 용서라는 힘을 서로에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참회와 용서, ‘적’을 용서하는 것, 또 용서를 청하는 것에서부터 그리스도의 평화는 출발한다. 그리고 아렌트의 이야기처럼 용서는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의 비핵화나 평화체제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오랜 세월 미국 등 국제사회와 대립하고 있는 북한, 미·중 사이의 갈등, 그리고 ‘남남갈등’까지 떠올리면,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민족이 화해하고 일치하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복음을 믿는 신앙인은 참회와 화해를 통한 진정한 평화를 포기할 수 없다. 참된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진복(眞福)을 누리기 때문이다.(마태 5,9 참조)

미사 때마다 “내 탓이오”라고 말하며 가슴을 치는 신앙인은 단죄하고 무찌르는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십자가의 신비를 믿으면서 내 마음대로 상대를 변화시키는 ‘일치’가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구원의 신비가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