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한국천주교 순교 성지를 찾아서」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1-11 수정일 2022-01-11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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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갑순 지음/324쪽/1만8000원/프리뷰

순교자 피와 눈물, 깊은 신심 담긴 길을 걷다

서울대교구 새남터 순교성지.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이곳에서 처형당한 이후 주로 천주교 사제들의 순교지가 됐다. 도서출판 프리뷰 제공

한국천주교 역사는 수많은 순교자의 희생으로 그 뿌리를 튼튼히 내렸다. 1784년 이승훈에 의해 조선에 전파된 천주교는 근 100년 동안 10여 회에 걸쳐 크고 작은 박해를 겪어야 했다. 당시 조선 조정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학죄인이라 하여 대역죄로 다스렸고, 2만여 명의 신자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200여 년 전 벌어진 아픈 역사는 그들의 묘와 생가터, 기록물 등으로 전국 곳곳에 남아 지금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말을 건다.

문갑순(유스티나) 교수는 대학교 정년퇴직을 하고 성지 순례를 떠났다. 지인이 선물한 「한국천주교 성지 순례」 한 권을 들고 떠난 여정. 아름다운 성당에 감탄하기도 하고, 잔혹한 박해 흔적이 남아 있는 순교지에서는 충격과 슬픔에 빠지기도 했던 문 교수는 “순례길은 곧 이 땅의 역사에 대한 순례이고 신앙 선조들에 대한 경배의 길일뿐만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깨닫는 은총의 시간임을 알게 됐다”고 밝힌다.

그렇게 167곳의 성지를 정성스레 순례한 문 교수는 은총의 시간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여산 하늘의 문 성당. 여산은 1868년 무진박해 순교지다. 여산 성지는 의로움 때문에 박해 받은 순교자들이 하늘나라로 들어간 문이라고 하여 ‘하늘의 문 성당’으로 부른다.

성지가 그곳에 생긴 이유를 알고, 더욱 의미 있게 성지를 순례하길 바랐던 문 교수는 한국천주교 역사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성지들을 소개한다. 명나라에 진출한 예수회 소속 이탈리아 사제 마테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가 조선에 전래돼 몇몇 학자들이 서학을 연구하면서 신앙의 싹을 틔운 조선. 문 교수는 당시 서학을 종교로 받아들이고 종교생활을 실천했던 홍유한의 고택지와 그의 가묘가 조성돼 있는 우곡성지에서 순례 여정을 시작한다. 이후 을사추조적발사건, 진산사건, 신해교난, 기해교난을 거쳐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신부의 서품과 순교라는 격동의 길을 함께 걸으며 그 길에 서려 있는 순교자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깊은 신심을 찾아 책에 담았다.

문 교수는 “한국의 천주교 성지를 순례하면서 무엇보다도 수많은 전란이 휩쓴 이 땅에서 어떻게 167곳의 성지로 대표되는 많은 순교지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하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밝힌다.

모방·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주교의 유해를 안전한 곳으로 모신 박 바오로, 그 뜻을 이어받아 여러 외국인 신부의 시신을 서울 새남터에서 왜고개로 옮겨 안장한 박 바오로의 아들 박순집(베드로),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지게에 지고 150리 길을 걸어 미리내로 모신 이민식(빈첸치오), 갈매못에서 순교한 네 성인의 시신을 서짓골로 이장한 서짓골 신자들 등 성지를 지킨 사람들의 헌신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167곳 성지 이야기를 끝내며 문 교수는 “성지 순례를 나서는 교우들이 성지의 유래와 역사를 알고 가면 순례길이 훨씬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며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순교자들의 성지를 잘 가꾸고 지키고 현양하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전한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