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1-18 수정일 2022-01-18 발행일 2022-01-23 제 3279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새해를 맞아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예전에 복음서를 필사했던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오랜만에 필사 노트를 펼쳐보면서, 복음서를 쓰던 그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매일 한 장씩 복음서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옮겨 적다가, 성경 안에 이런 내용도 있었나 싶은 낯선 단어와 구절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명색이 대학원에서 신약성서를 전공으로 공부했는데도, 생전 처음 보는 듯 새롭게 다가오는 말씀이 튀어나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허술함을 들킨 것처럼 창피한 마음을 감추면서, 그 말씀에 오래 머물며 곰곰이 새겨보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복음서 필사는 저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할 때는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라고 했던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처럼 말이죠.

5세기 초 신구약 성경을 대중 라틴어로 번역하여 오늘날 우리가 읽는 성경의 토대를 마련한 성서학자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예로니모 성인의 선종 1600주년을 맞아,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도록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제정하는 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발표했습니다. 연중 제3주일로 정한 이유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맞물린 때라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를 강조하는 의미라고 교서는 설명하지만, 늘 성경을 가까이하는 개신교 형제자매들의 열성을 우리 가톨릭신자들도 좀 본받자는 은근한 독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개신교 신자 중에는 고지식하게 문자 그대로 의미에만 매달리는 ‘근본주의적’ 성경읽기와 해석에 집착하는 이들도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에서 힘을 얻고 그 말씀에 따라 살고자 노력하는 신앙인들도 많습니다. 얼마 전 개신교 쪽에서 조사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개신교인들의 신앙생활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성경 묵상과 기도’라는 응답이 약 60%나 될 정도로 두드러졌습니다. 팬데믹으로 대면 예배나 소모임이 제한된 상황에서, 개신교인들은 성경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비해 가톨릭신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으로 정리된 교리교육에 더 익숙해서인지, 미사 전례 때 듣는 독서나 강론 외에 성경을 직접 읽거나 공부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지 않아 보입니다. 매년 발표하는 교회통계에서 성서 강좌나 모임 등에 참여한 수료자 총수를 집계한 통계를 살펴보면, 팬데믹 이전 10년(2010~2019년) 동안 매년 평균 17만 명 정도가 성서 교육에 참여한 것으로 나옵니다.

같은 시기 평균 신자 수가 550만 명이니, 약 3%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물론 복음 나누기 중심의 소공동체 모임에 참여하거나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는 이들도 있겠지만, 교회 내 여러 설문조사를 참고하면 약 40% 정도의 신자는 성경을 잘 안 읽는다고 합니다.

새해 각 교구에서 발표한 교구장 사목교서를 살펴보니, 성경읽기를 강조한 교구가 꽤 많습니다. 성경을 읽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자는 초대는 그저 성경에 관한 지식을 늘리자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느님 말씀에 따라 식별하고 그에 따라 살아가자는 요청일 것입니다.

“성경에 귀 기울이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우리 삶 앞에 놓인 커다란 과제입니다.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눈을 열어 주어 우리가 숨 막히고 메마른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나눔과 연대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13)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