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96)성경의 먼지를 걷어내라/ 윌리엄 그림 신부

입력일 2022-02-08 수정일 2022-02-08 발행일 2022-02-13 제 3281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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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 ‘말씀’ 두지 않으면
교회는 광신 집단으로 변질돼
성사와 전례, 기도에 충실하고
전례 속 복음 선포 주목해야

교회 운영의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규칙을 고수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여긴다. 대부분은 ‘~을 하지 말라’로 시작한다. 주로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교회법을 인용해 그리스도인의 생활양식을 안내하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추상적인 ‘원칙’들이 우리의 삶과 가치, 성화를 향한 투쟁보다 앞에 서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백성을 위해 ‘하느님의 법’까지 제쳐놓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법에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다.

교리와 교회법은 중요하지만, 분명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고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것이 돼야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에서 선언했듯이 “교회의 모든 복음 선포는 바로 그리스도교가 그렇듯이 성경들로 양육되고 규정되어야 한다.”(21항)

종종 신앙교육은 교리와 약간의 성경 이야기를 배우는 것을 의미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자주 제외되기도 한다.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이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통해 활동하는 대신, 교회의 교리와 교회법에 대한 증거를 만들기 위해 성경 말씀을 끌어내고 있다.

교회의 교리교사들은 성경에 비춘 가르침을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강론에 공동체를 양성하고 공동체의 잘못을 반성하고 직면한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성경의 말씀을 제시하고 있을까?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하느님보다 권력과 특권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상황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대심문관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이 대심문관은 더 이상 지하 감옥에서 일하지 않는다. 현대의 대심문관들은 대성당들과 공문서 보관청, 설교단, 트위터 계정, 부유한 지지자들을 두고 있다. 그리고 제도화된 교회를 다시 하느님께 되돌리려는 시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력하고 있지만, 반대자들은 오히려 가톨릭교회라는 주식회사에 하느님을 직원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위기다. 우리가 각자 혹은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많은 곳에서 가톨릭교회는 그저 광신 집단으로 변할 위험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치료법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온전히 따를 수 있도록 쇄신하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성사와 전례, 기도, 성경과 성전의 계시에 충실해야 한다.

2019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Aperuit illis)를 반포해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을 기념하고 연구하고 전파하는 날로 삼았다.

“부활하신 주님과 신자 공동체와 성경이 이루는 관계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 정체성의 본질입니다.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는 주님께서 안 계신다면, 성경을 깊이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도 참으로 그러합니다. 곧, 성경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분 교회의 사명에 따른 여러 사건들은 이해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로니모 성인은 다음과 같은 합당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1항)

교회는 지난 2020년 첫 번째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지냈으며, 올해 1월 23일은 세 번째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너무나도 잘못되고 있는 교회에 본질적인 치료제를 처방했다. 우리가 이 치료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많은 곳에서 가톨릭교회는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희망하지만, 교회가 죽는다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도 사라진다.

하지만 교황이 제시한 치료제는 우리가 그저 성경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며 성경을 읽어야 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경 근본주의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학자들이 제시하는 통찰력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몇 세대 전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과 말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성령의 감화로 성경을 쓴 저자들은 수천 년 전 사람들이며, 이들은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했다.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특히 헌장 3장에서는 ‘성경의 영감과 그 해석’을 볼 수 있다. “성경 저자가 글로써 주장하고자 한 것을 옳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에 널리 쓰이던 그 지방 고유의 사고방식, 언어 방식, 설명 방식 그리고 사람들이 상호 교류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방식들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12항)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만나는 일이다. 이는 전례 안에서 이뤄지는 복음 선포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로, 잘 준비된 강론이 필요하다. 강론에서는 사제의 복음 묵상과 기도를 통해 통찰력과 시사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의 삶과 사명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 신앙의 깊이와 성숙도도 위험에 빠져있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