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31) 사회적 자아와 일상의 자아 사이에서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3-23 수정일 2022-03-23 발행일 2022-03-27 제 3287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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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사회·정치적 의견 표출의 장… 선거가 끝났다
선거 후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사회적 삶-일상적 삶 사이에는
비판적·심리적 거리가 필요
스스로의 삶과 역할에 집중해야

선거가 정치 참여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저마다의 삶 속에서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참다운 정치 참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선거철 마음의 풍경

선거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정치적 사건은 사회적 파장을 낳는다. 선거는 선택과 결정의 장이지만, 그 결과는 어쩔 수 없이 후유증과 상처를 남긴다. 결과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민주주의 핵심이다. 하지만 사회적이고 외적인 수용과 승복과는 별개로 결과에 따라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힘듦과 아픔은 남는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사람들은 기쁠 것이고, 자신의 선택이 수용되지 않은 사람들은 좌절과 실의에 빠질 것이다. 냉정하게 살펴보면, 자신이 당선되거나 낙선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투표 하나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투표 하나에 얹혀놓은 생각과 마음과 감정과 의지의 무게만큼 기쁨과 좌절의 무게도 큰 것 같다.

왜 우리는 그 투표 하나에 그 많은 마음과 감정을 싣는 것일까.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심히 지나가는 하나의 선거일 수 있다. 선거의 후유증은 정치적 관심, 사회적 관심이 깊은 사람들에게만 발생하는 것일까.

선거는 한 실존적 개인이 사회적,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동의 장이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얼마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 사회적 주장과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국가와 사회의 방향 설정에 구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은 선거다.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시민이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장은 그리 많지 않다. 시민은 선거 때만 주인의 역할을 한다. 오래 억눌려 있었던 주인의식을 선거라는 매개에 모두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서 선거철은 늘 정치적 과잉의 시기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 세대는 젊은 세대보다 분명 정치에 민감한 세대다. 물론 그 정치적 예민성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아무튼, 선거기간 동안 내 마음은 늘 롤러코스터를 탔다. 대선이라는 사회 사건과 현상 속에서 내 마음과 감정의 결이 어떤 진폭으로 움직이는지, 그 궤적을 기록하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생은 늘 기대와 희망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일부러 비관적 상황을 그려보기도 하고, 가능한 한 낙관적 생각을 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한다. 생은 꼭 예상 밖으로 그 궤도를 더 많이 그린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재의 수요일에 잠시 반성했다. 우리 삶과 운명은 먼지와 재일 뿐인데, 뭐 그리 정치에 온 마음을 투사하며 살고 있는지. 선거의 장만이 정치의 현장은 아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일상 삶 속에서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참다운 정치 참여라는 말이다.

그저 마음으로 기도했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 당선되기를, 혐오와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타자와 약자의 고통과 아픔에 연대할 줄 아는 사람이 당선되기를, 갈등과 분열을 넘어 평화와 통합을 추구하는 사람이 당선되기를, 생명과 환경의 문제를 깊이 성찰할 줄 아는 사람이 당선되기를.

■ 선거의 영향과 정치적 동일시 현상

솔직히 고백하면, 꽤 오래전부터 정치와 권력의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사회적 흐름과 현상들, 문화 영역의 움직임만을 눈여겨볼 뿐이다. 직업적 정치의 세계는 늘 소수의 권력자들과 정당 세력에 의해 좌우된다. 정치적 세력의 교체가 사람들의 개별적 일상 영역까지 깊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에게 정치세력의 교체는 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가정방문과 봉성체를 다녀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시기에 약자들을 향한 복지혜택이 확연히 줄어드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선거에서 선택된 정치적 권력이 사회의 흐름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지,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돌보는지에 대한 관심과 감시의 눈길을 놓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어떤 교체이든, 정치적 권력의 교체는 늘 정치적 힘과 경제적 부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막대한 이익과 혜택을 낳을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사람들은 물질적 이익과 혜택의 여부에 따라 정치적 선택을 한다. 이기적 개인주의와 부족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동선과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며 투표하지 않는다. 선거가 사회 공동체의 방향과 흐름을 올바르게 선택하는 축제의 장이라기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들이 충돌하는 장이 되고 있다. 선거철에 우리는 권력과 이익에 따라 변해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정치학자들이 분석했듯이, 선거라는 현장에는 정치적이고 경제적 동질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이념적이고 심리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어떤 정치적 세력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의 결과에 따르는 심리적 대리 만족과 위안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기쁨과 만족은 허상일 때가 많다. 왜 가난한 이들이 계급적 동질성보다 심리적 동질성을 더 추구하는 것일까. 이념과 정서와 지역이라는 매개를 통해 심리적 동질성을 확보하려는 것은 인정 욕망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확장되고 연장된 자아를 통해 인정 획득의 영역이 확대되기를 원한다. 기득권 선망(羨望)이 ‘강자동일시’ 현상을 낳는다. 일상에서 인정 욕망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의 장에 욕망을 투사하는 것일까. 강자인 타자가 얻는 인정을 왜 자신이 받는 인정으로 착각하는 것일까.

■ 일상, 실존, 운명을 생각한다

선거는 끝났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사회적 삶과 일상적 삶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또 어떤 관점에서 보면, 분명 다른 현장이다. 몸을 지닌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거시 정치의 영역에서 일상의 미시 정치 영역으로 돌아와야 한다. 사회적 자아와 일상의 자아 사이에는 비판적,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정치적 현상과 사건에서 일종의 동일시 행위를 통해 희비가 교차하는 것과 실제 삶에서 우리가 직접 겪어야 할 운명들의 무게를 어떻게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일상에서 마주해야 할 실존적 삶의 무게들을 생각하면, 정치적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은 부질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생계의 힘듦, 늙음, 질병의 고통,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생각한다.

선거의 결과는 우리에게 던져졌다. 정치적 사건의 결과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언젠가 죽음도 그렇게 다가올 것이라는 뜬금없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아득하고 답답해졌다. 일상의 시간들을 더 소중히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자고 결심한다. ‘신학서원’ 운동을 통해 사람들의 신앙적 성찰과 사회문화적 성찰의 힘과 우애와 연대의 감성을 키우는 데 노력을 기울이자고 다짐한다. 세상의 변화는 정치적 사건과 행위들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일상의 사회문화적 토대 안에서만 가능하다. 한 사회의 정신적, 문화적 토양의 구축과 변화에는 교육과 언론과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던가.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