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주님의 은총에 온전히 기대어 살고 있습니까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입력일 2022-04-05 수정일 2022-04-05 발행일 2022-04-10 제 3289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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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50,4-7 / 제2독서  필리 2,6-11 / 복음  루카 22,14-23,56
‘섬기는 왕’이 되고자 하신 예수님
사랑과 기도로 주님 은총 청하며
자신의 힘과 의지는 내려놓은 채
겸손하게 예수님의 길 따라가길

예수님과 함께 걷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탄 적이 없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 모습은 왕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뤄짐을 보게 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깔고 환호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환호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줄 거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제자들의 생각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는 왕이 되고자 하셨고, 세상의 임금이 아니라 모든 것의 왕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하십니다.

그 모습이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8) 이 말씀대로 내 생각과 다른 그분의 생각, 내가 가고자 하는 길과는 다른 그분의 길을 저는 살면서 자주 만납니다.

예전에 섬으로 발령 받았을 때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걱정을 했었습니다. 도시에서 할 일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섬에 살아 보니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았습니다. 신자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신자 한 분 한 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도 배웠고, 환대하고 경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배웠습니다. 또 농사도 지어 보고, 바다에도 나가서 여러 가지 일들을 체험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3년쯤 됐을 때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지만,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주님이 보여 주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필립보 네리 성인의 영화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습니다. 필립보 네리 성인은 로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에 갔던 이유는 예수회에 지원해서 인도로 선교를 가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원 제한이 있어서 대기하고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로마 근교의 버려지고 방치된 아이들을 봅니다.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없어 돌보기 시작했고, 그 일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성인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지만,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지내며, 다른 길을 받아들이고 그 길 안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내 생각과는 다른 하느님의 생각 앞에서, 내 고집과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분과 함께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토 디 본도네 ‘예수살렘 입성’ (1304~1306년).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걷기 위해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전에 “주님과 함께라면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잡히시고 끌려가시게 됐을 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끝까지 함께 걷지 못했던 걸까요? 아마도 다음의 두 가지가 부족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먼저 ‘사랑’이 부족해서입니다. 부족하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죠.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녔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더 크고 충만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길은 가장 큰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가 부족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괴로워하시며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에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는 피곤하여 잠이 들어 버리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일어나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였던 예수님은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씀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지만,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부족함이 우리의 부족함일 수도 있습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랑과 기도가 부족했지만 주님을 부르고, 또 그분의 은총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풍랑을 보고 두려워 물에 빠졌을 때에 주님께 구해 달라고 소리칩니다. 또 예수님을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은총에 기대어 으뜸 제자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거듭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 의지로 이룰 수 있다는 교만함에서 주님의 은총을 청하는 겸손함으로 정화됐으리라 생각합니다.

러시아에 붙잡혔던 예수회의 월터 J. 취제크 신부님도 취조 과정에서 자기 의지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다가 큰 좌절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내 의지로 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내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고 의지하게 됐을 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죽음을 대하고 취조관들을 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취조관과 대결하는 나가 아니라, 하느님과 대면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자 했는지, 그분의 은총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내 의지가 그동안 많은 일을 이루게 해 주었지만, 그분의 길을 끝까지 걷기 위해서는 내 힘과 의지가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따라 나서는 그 길에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그분께 맡기는 마음으로’ 정화하고자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마음이어야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 겁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