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진혼곡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04-05 수정일 2022-04-05 발행일 2022-04-10 제 3289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진혼곡.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위령미사곡인 ‘레퀴엠’(Requiem)이라고 부릅니다. 레퀴엠은 ‘안식’을 의미하는 라틴어(requies)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간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다가 오랜만에 ‘탭스’(Taps)라는 유명한 진혼곡을 들었습니다. 트럼펫에서 울려 나오는 1분 10초 길이의 진혼곡.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낍니다.

벌써 4월입니다. 4월의 첫 주일이자 사순 시기에 맞이한 ‘제주 4·3사건’은 여러 생각을 해 보게 합니다. 제주 4·3 사건은 하루의 사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는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정의돼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시기에 벌어진 이 참혹함의 기억은 ‘사태’와 ‘사건’, ‘항쟁’ 등 그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몰라 지금도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글을 새기지 못한 백비(白碑)가 놓여 있습니다.

‘제대로 애도되고 기억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다른 한 번은 비극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제주 4·3’을 모티브로 한 예술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날의 아픔을 되새기며 잊지 말자고 책으로, 노래로, 그림으로 말입니다.

책으로는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 유명합니다. 노래로는 가수 안치환이 불러서 잘 알려진 ‘잠들지 않는 남도’가 있습니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라는 가사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유채꽃 속에 숨어 있던 제주의 아픔을 깨닫게 합니다.

‘잠들지 않는 남도’를 흥얼거리다 보니 이 노래야말로 ‘제주 4·3 사건’으로 희생된 영혼들의 진혼곡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드는 생각은 이제는 슬픔과 비장함을 벗어던지고 환희의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과 사람이 죽고 죽이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온 세상은 안식과 평온을 누리고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소리 지르네’(이사 14,7)라는 성경 말씀처럼 말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