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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자비를 사는 사람들!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4-19 수정일 2022-04-19 발행일 2022-04-24 제 329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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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온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우선 과제로 제기되는 것 중 하나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요청입니다.

한국사회의 갈등지수는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높은데, 올해 초 발표된 ‘2021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서도 응답자의 88.7%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부문별로는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83.2%), ‘못사는 사람과 잘사는 사람’(78.5%), ‘경영자와 노동자’(77.1%)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고 나타났습니다. 또한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3.2%p), ‘수도권과 지방’(+5.5%p), ‘남자와 여자’(+5.8%p)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전년보다 더 증가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이념 갈등’이 가장 심각한 갈등이고, 최근 들어 ‘젠더 갈등’의 심각성이 급증했다는 결과입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가장 책임이 있는 집단으로 10명 중 9명이 ‘국회’와 ‘언론’을 지적했고, 이 두 집단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가장 낮은 편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례로 최근 젠더 갈등이나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관련한 갈등만 보더라도, 사회적 논쟁 수준을 넘어 공격적인 비하와 혐오로 번지는 데는 집단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권에서 오히려 불을 지르고, 이를 비판해야 할 언론이 방관하거나 더 부채질한 측면이 큽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사회제도 개선이 남성을 차별하는 것이고,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줄이는 사회복지 강화가 비장애인을 불편하게 한다는 일부 극우 세력의 증오와 혐오 발언이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입을 통해 마치 합리적이고 정당한 주장처럼 힘을 얻게 되는 과정과 결과를 보며, 우리 사회 갈등의 가장 큰 책임자로 국회와 언론의 책임을 지적한 다수의 의견에 공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정치가 갈등을 평화롭게 조율하지 못하고, 언론이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바람직한 여론을 형성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교회와 신앙인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이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 중 ‘종교계’는 14.7%만 긍정했을 뿐, 정부나 시민단체보다도 낮았습니다.

다른 조사에서도 사회통합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집단 중에서 ‘종교단체’는 최하위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계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별로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평가인 셈입니다.

어쩌면 세상에 평화를 중재하기는커녕,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 갈라져 싸우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안에는 이념적으로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이도 있고 가난한 이도 있습니다. 또한, 젊은이도 있고 나이든 사람도 있으며,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저마다 갈라져 싸우기 바쁜 세상과 달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 갈등하지 않고, 차별이나 편견 없이 형제자매로 서로를 존중하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건네시는 ‘평화’의 인사와 ‘용서’의 당부를 기쁘게 실천하고 있을까요? 신자들이 성당에서 활동하면서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사람들과 관계가 어렵다거나 뒤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말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면서, 세상 갈등 못지않은 짙은 그늘이 교회 안에도 드리워져 있음을 느낍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이 모여서 이룬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갈라 3,28)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자 했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봅니다.

아마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깊이 체험한 이들일수록 다른 이들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며 평화로운 관계를 맺어가려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갈등이 점점 혐오의 정서로까지 번지는 이 시대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은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꾼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