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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2. 두봉 주교(1)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22-05-17 수정일 2022-05-20 발행일 2022-05-22 제 3295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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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누구든 원하고 필요로 할 때 함께하는 이”
초대 안동교구장 지내며
지역 주민 모두 위한 사목 펼쳐
방송 이후 전국 각지서 찾아와
자신의 얘기 털어놓는 사람들
누구든 문 열어주며 환대

두봉 주교의 구술을 기록하는 시간. 그는 교구 사명선언문 ‘기쁘고 떳떳하게’ 액자 아래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은 후 “오늘도 하느님 앞에서 기쁘고 떳떳하게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진 이소담 수습기자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분과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갖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대답의 끝에는 ‘감사’만이 남습니다.

“저는 너무나 자유롭습니다. 모든 게 다 좋습니다.”

그분의 해맑은 눈빛과 함박웃음에서도 자유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자유롭다”고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엔 없는 분이시기에 불안하지 않고 자유롭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이기에 다 좋다”고 합니다. 매일 몇 시간씩 하느님과 마주 앉아있습니다. 묵주기도도 하고 성무일도도 바치지만, 그저 침묵을 봉헌할 때가 많다고 합니다. “늘 필요한 것을 주시는데 굳이 청할 것도 없고, 찬미 또한 그분이 주시는 은총으로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분 앞에서 무엇을 더 할까요?”

매 순간순간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삶. 그 삶을 온전히 채우고 있는 하느님을 향한 ‘감사’.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그 감사의 기도를 양식 삼아 그분은 오늘도 하느님 앞에서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레나도·杜峰·René Dupont·93) 입니다.

‘사제가 아닌 모습?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시는 주교님. ‘사제가 된 걸 후회한 적?’ 그런 생각 자체를 떠올려본 적도 없다는 주교님.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 - 원로 주교의 삶과 신앙’ 두 번째 이야기는 두봉 주교님께서 풀어주셨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드릴 질문이 많았습니다. 주교님께서 대뜸 ‘한국 음식 중에 무엇을 좋아하는가’ 등의 질문은 수없이 받았는데 대답할 게 없다 하십니다. 그날그날 주어진 것을 감사히 맛있게 먹기에 뭐든 다 좋다고 하십니다. 만남의 시간은 그 맛있는 점심식사로 시작됐습니다. 주교님께선 서울에서 경북 의성군 봉양면 문화마을까지 이동하는 기자들을 배려해 12시 점심시간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동네 아주머니께서 점심식사는 준비해주시고 청소 등을 도와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아주머니께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셨습니다. 그런 상황을 모르고 간 기자들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선 주방에선, 할아버지 주교님께서 손수 밥을 짓고 국을 데워 상을 차리고 계셨습니다. ‘식탁을 예쁘게 차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과 함께.

본격적으로 주교님의 구술을 받으려는데 초인종이 울립니다. 누군지 살며시 문을 열고 빠끔히 얼굴을 들이밉니다. 주교님께선 최근 한 TV 종합편성채널 유명 예능 프로그램과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습니다. 방송 이후 거의 매일 손님들이 온다고 합니다. ‘미리 약속하면 부담을 드릴까봐 그냥 왔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인근 안동에서부터 서울, 부산, 제주 전국 각지에서 왔지만 ‘계셔서 만나면 기쁘고 안 계시면 어쩔 수 없고’라고 ‘쿨~하게’ 말합니다. 그냥 한번 뵙고 싶었다고, 사진 한 장 찍고 싶다고, 건강하신 지 궁금했다면서 찾아옵니다.

주교님께선 “이 많은 사람들이 왜 나를 찾아올까”, 기자에게 반문하십니다. 절반 이상은 비신자이고 딱히 종교적인 주제로 대화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유명 프로그램의 영향력도 클 것이라는 말에, 주교님께서 설명을 덧붙이십니다. “모두들 자기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합니다. 근사한 해결책이나 조언을 듣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얘기가 하고 싶은 겁니다.”

주교님께선 피정 지도나 강의 등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가 아니면, 언제든 누구에게든 문을 열어주십니다. 사실 그 집의 문은 24시간 열려 있습니다. 누구에게든 다과를 권하고 어떤 것도 먼저 묻지 않으십니다. “사제는 누구든 원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라고 하십니다. 후배 사제들에게도 항상 ‘누구든 원하고 필요로 할 때 사제는 절대 거절하지 말고 늘 함께하고 들어주라’고 권하십니다.

두봉 주교님은 프랑스인이자 한국인입니다. 또한 봉양 두씨의 시조입니다. 1953년 사제품을 받자마자 이듬해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에 왔고, 대전교구에서 사목하다 파리 외방 전교회 한국지부장도 역임했습니다. 1969년 초대 안동교구장이 되면서부터 50년도 훌쩍 넘게 안동교구민으로 살아온 시간, 신자들만을 위한 사목이 아니라 지역 주민 모두를 위한 사목을 펼쳤습니다. 후임 교구장 주교님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경기도 한 공소에서 지내다, 현 교구장 주교님의 간곡한 권유로 의성 문화마을에 집터를 잡았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이 지역에 신자가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선교사고요.”

그분 집에는 ‘두봉 천주교회’라는 문패가 달려 있습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들어가보겠습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