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 우리의 예루살렘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2-05-24 수정일 2022-05-24 발행일 2022-05-29 제 329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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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사도 1,1-11 / 제2독서  에페 1,17-23 / 복음  루카 24,46-53
“예루살렘에 머물러라” 주님의 당부
크게 기뻐하며 굳건히 지킨 제자들
주님 모시고 사랑 전하는 삶을 살며
매일 하느님 찬미하는 직무 실천하길

피에트로 페루지노 ‘그리스도의 승천’ (1495~1498년).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을 기념하며 부활 7주일을 맞이합니다. 사순 시기 동안 고난을 겪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 수난에 동참했던 기억이 이리 선연한데 벌써 여섯 주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사순 시기 동안 단식하고 금육하며 고행하였고 수난과 관계된 말씀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아팠습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사랑이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 마음, 변치 않으셨지요?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동일인입니다. 더욱이 같은 사건을 전하고 있으니,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거푸 듣는 셈입니다. 루카 사도는 그날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모두 이루신 주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을 축복하시며 들려주신 마지막 당부를 전하는데요,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하신 것으로 전하고 복음서에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고 이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곧 그 자리에 머무르는 일일 테니 흠잡을 일은 아닙니다. 다만 제자들이 오롯이 주님의 당부를 ‘말씀대로’ 따랐다는 점, 곧이곧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러 지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딴지를 걸기 일쑤였으니 말입니다. 그 중차대한 주님의 부활 예고마저도 귓전으로 흘려들은 탓에 우왕좌왕했으니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분명하게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라 하셨음에도 갈팡질팡했으니 말입니다. 주님께서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천사를 보내셔서 “말씀하신 대로”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고, 거기에서 뵙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셨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무용지물, 잔뜩 풀이 죽어서 귀향을 결정하고 고작 고기나 잡겠다며 우르르 몰려다녔으니, 주님의 가르침은 깡그리 잊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랬던 그들이 오늘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는 말씀에 “크게 기뻐하며” 굳건히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 변화입니다. 루카 사도는 신앙이란 그렇게 영혼이 어두워지고 사랑의 메마름에 빠지는 상황이 되더라도 견디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믿음의 길에서 더러 의심하고 주저하더라도 다시 주님을 향하는 것만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렇듯 한시적인 땅의 삶을 살아가기에 주님 계신 그곳을 사모하며 지냅니다. 천년만년 이 땅에서 살 것처럼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벌써 십자가 고난 묵상에 심취했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어졌다면 곤란합니다. 사순의 은총은 스스로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는 결단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지낸다면 야단입니다. 다시 십자가 없는 부활을 꿈꾸며 땅에서의 성공과 영광만을 고대한다면 허사입니다. 온종일 “고기 잡으러” 갈 궁리만 하고 살아가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야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음미하는 구경꾼에 불과한 까닭입니다. 온 것을 바쳐 거행되는 주님의 미사에 관람객으로 살아간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매우 당연한, 마땅한 결과로 여기는 불손한 모습이기에 결국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는 죄를 범하는 못난 처사라는 얘기입니다.(갈라 2,20-21 참조)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마흔 날 동안,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흩어진 믿음을 동여 주시느라 무지무지 애를 쓰셨습니다. 기죽은 제자를 엠마오 길에서 챙기시고 ‘티베리아스 호수’에서는 제자들의 아침 식사까지 마련하시며 토닥여주셨습니다. 아, 이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의 헛걸음마저도 은총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둘러둘러 멀리 돌아서 딴짓을 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이끌어주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믿음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주님을 찬미하는 마음가짐이 필수입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매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고난과 핍박이 있더라도 예루살렘에 머무는 결단의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결단코 주님께서 승천하신 하늘을 쳐다보며 하릴없는 감상에 젖어 드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을 모두 완수하셨습니다. 드디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부활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의 제자인 우리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지낼 것을 명하십니다. 명하실 뿐만 아니라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채워주시며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앞장서도록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함께 하시며 축복해주십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하느님 약속의 철저한 이행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애썼던 그 모든 희생의 시간에는 반드시 하느님 나라가 선물될 것이라는 벅찬 선포가 담겨 있습니다. 때론 의심하고 때론 주저하면서도 거듭 희망하는 믿음인에게 들려주는 하늘의 응원입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오늘도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우리의 예루살렘은 주님을 모시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직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 마음에 주님의 예루살렘이 우뚝하기를, 열망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