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환경의 날 특집] 기후위기로 시작된 연안침식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5-31 수정일 2022-05-31 발행일 2022-06-05 제 329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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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사라지는 백사장… 국토 침식 먼 미래 아니다
해안토양 점차 줄어들어
집뿐만 아니라 일자리 잃어
더 이상 남의 일 아닌 기후위기

김경자씨의 집이 무너진 뒤 주민들의 피해를 막고자 강원도 강릉시 사근진 해변에 세워진 방파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배달음식을 시키고, 철마다 새 옷을 사며, 하루에 한 번 커피숍에 들러 일회용 잔에 음료를 받아온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지만, 그 하루의 끝에는 지구를 위협하는 온실가스 배출이라는 결과가 남았다. 그렇게 뜨거워진 지구는 빙하를 녹였고 해수면을 상승시켰다. ‘바다가 조금 뜨거워졌을 뿐인데’라고 넘기기에는 결과가 참혹했다. 바다생물들이 살기 힘든 환경이 됐고, 해변으로 점점 올라온 바닷물은 집을 덮쳤다. 파도는 모래를 쓸어갔고 드넓었던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있다. 별일 없이 보낸 줄 알았던 나의 어제가 별일이 있는 오늘을 만들었다. 기후위기로 위험에 처한 것은 북극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 삶의 터전 바다, 삶을 위협하다

강원도 강릉시 사근진 해변. 새하얀 모래밭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이곳은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5월 27일, 아직 무더위가 찾아오지 않았음에도 서핑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모래사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는 발등을 간지럽히고 사라지는 파도가 신기한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파도를 쫓는다. 평화롭고 아늑한 이곳의 풍경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지 느끼게 했다.

하지만 선물과도 같은 바다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사근진 해변에서 소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경자(75)씨에게는 30여 년 전 겪은 일이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큰 파도도 아니었어요. 1m 정도로 팔딱팔딱 치는 파도가 모래를 깎아 나가며 집 가까이 오더라고요. 조금씩 집주변 모래가 쓸려나가더니 집이 콕 무너졌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강풍이 불 때면 큰 파도가 들이닥치긴 했지만, 작은 파도가 집 앞까지 온 것은 처음이었다. 큰 파도가 아니니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씩 가까이 다가온 파도는 집을 지탱하고 있던 모래를 깎아버렸고, 김씨의 집을 무너뜨렸다. 한쪽으로 기운 집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급하게 간단한 살림살이만 챙겨 바다에서 좀 더 떨어진 집으로 옮겼으나 그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만 김씨는 집을 9번이나 옮겨야 했다.

“얼마나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그 일을 당하고 신경이 마비돼 하반신을 못 쓰게 됐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도 가봤는데 신경성으로 생긴 병이니 세월이 약이라고 하더군요. 세월이 흘러 조금씩 다리가 나아지긴 했지만, 그날의 일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줬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고향과 같다고 생각한 곳이기에 사근진 해변을 떠날 수는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청, 시의원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해변에는 방파제가 세워졌고, 모래가 쓸려나가는 현상이 완화됐다. 사근진 해변 양쪽에 세워진 방파제는 연안침식이 가속화되고 있는 바다의 위기를 방증하고 있었다.

사근진 해변에 파도가 민가까지 몰려오고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사근진 해변에서 800m가량 떨어진 순긋 해변. 이곳에서 60년간 어업을 하고 있는 박삼랑(81)씨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 바다를 보며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0년 전부터 바다가 달라지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배가 다니기 어려울 만큼 풍성했던 해초들이 지금은 듬성듬성 자라고 크기도 작아졌어요. 수온이 높아졌기 때문이죠. 해초는 물고기들이 살 수 있는 집이에요. 근데 그게 없어졌으니 물고기들이 제대로 자라기 어렵죠.”

사근진 해변은 개다시마 서식지로 유명했다. 한입 베어 물면 진액이 가득하고 달콤했다는 개다시마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자 품목이었다. 하지만 20여 년 전, 개다시마가 완전히 사라졌다. 높아진 수온은 바다 생태계를 바꿔 버렸고, 누군가의 꿈과 미래를 앗아갔다. 박씨는 “바다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바다가 이렇게 바뀐 지 어떻게 알겠어요”라며 “빠르게 변하는 바다를 보면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한 사천진 해변도 연안침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0~2020년 평균해빈폭이 40.1m였던 사천진 해변은 지난해 37.7m로 관측됐다. 1년 새에 2.4m가량 감소한 것이다. 특히 바다와 인접해 해안도로가 건설돼있는 사천진 해변은 큰 파도가 치면 인근 상점과 민가에 피해가 생길 우려가 크다. 실제로 사천진 해변에는 성인의 키를 훌쩍 넘기는 모래언덕이 형성돼 있었다. 사천진 해변이 있는 사천진리가 고향인 주민 김영문(70)씨는 “어렸을 때는 사천진 해변이 지금의 세 배 정도 될 만큼 길었다”며 “해변이 짧아지면서 강풍이 불면 해안도로 너머로 파도가 들이치는 일이 잦아졌다”고 설명했다.

연안침식이 심각한 강원도 강릉시 사천진 해변. 파도가 모래를 쓸어가 거대한 모래언덕이 만들어졌다.

■ 백사장이 사라지고 있다

해안의 토양이 줄어드는 연안침식 현상은 가속화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전국 250개소 연안침식을 조사한 결과, 2014년과 2020년에 C등급(우려)은 94곳에서 113곳으로 19곳 증가했다. D등급(심각)은 14곳에서 43곳으로 28곳 증가했다. 침식 우려 및 심각 비율을 나타내는 침식우심률은 2014년 43.6%에서 2020년 62.4%로 크게 증가했다.

연안침식은 개발을 위해 무분별하게 해사를 채취하거나 모래의 흐름을 교란시키는 인공 구조물을 설치할 때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자의 이유라면 구조물을 허물거나 모래를 다시 채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상승된 해수면을 복구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2012년 8월 8일 태풍으로 인해 발생한 해일로 월파된 사천진 해변. 강원도 환동해본부 제공

기후변화에 관한 각국 정부 간 협의체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의 평균 기온은 1850~1900년보다 1.09℃ 상승했다.

기온이 오르면서 녹은 빙하는 해수면 상승의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 평균 해수면 상승은 1993년과 2002년 사이에 연간 2.1㎜에서 2013년과 2021년 사이에 4.4㎜로 2배 증가했다. 해수면 상승은 한국의 바다에도 영향을 미쳤다. 해양수산부 국립해양조사원이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2009~2018년) 동안 대한민국 연안 해수면 상승 폭이 연평균 3.48㎜로 지난 30년(1989~2018년) 동안의 연평균 2.97㎜보다 0.51㎜ 더 높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2100년 해수면이 1m 이상 상승하면 서해안 일부, 국토의 4%가 침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 뜨거워진 지구는 공동의 집에 함께 사는 모든 피조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손쉽게 구했던 식물을 없어지게 했고, 매년 같은 자리에 있던 해변을 사라지게 했다. 당장 내 삶과 맞닿아 있지 않았던 지구의 변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이렇게 전한다. “기후는 모든 이의,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입니다(23항) … 우리는 이 땅의 재화를 책임있게 사용해야 하고, 또한 다른 생명체들도 하느님 보시기에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을 것을 요청받습니다.”(69항)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