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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23)1857년 9월 14일 불무골에서 보낸 열세 번째 서한②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6-07 수정일 2022-06-08 발행일 2022-06-12 제 329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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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의 신앙 열정에 기쁨과 연민으로 가득차
성사 보기 위해 며칠씩 먼 길을 걷고
하느님 알고자 스스로 찾아온 신자들과
천주 알게 된 기쁨 전하는 교우들 보며
하느님 이끄심과 깊은 사랑 체험하기도

울산 울주군 간월재 능선에 펼쳐진 억새평원. 박해 시대 경남 지역 최초의 공소인 간월공소 신자들과 충청도 및 영남 지역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죽림굴로 피신하기 위해서 이 재를 넘나들곤 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최양업은 1857년 한 해 동안 2867명의 고해성사를 집전했고 어른 171명에게 세례를 줬다. 또한 181명의 신자가 신심단체인 전교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당시 최양업이 관할했던 지역의 신자는 4075명, 예비신자는 108명이었다. 산속에 숨어사는 신자들과 만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던 최양업. 나흘 길을 걸어 도착한 만산에서 만난 신자들의 이야기도 열세 번째 서한에 담았다.

■ 어른부터 9살 아이까지, 하느님 따르고자 먼 길 떠나다

현재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만산리로 추정되는 만산. 최양업은 이곳에서 가난한 가운데서도 천주교 교리를 실천하기 위해 모여 있는 다섯 가정의 신자들을 만난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외교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산골이었기에 근방의 신자들은 성사를 받기 위해 만산으로 모였다.

110리, 지금의 거리로 40여㎞ 떨어진 곳에 살던 신자들은 며칠을 걸어 만산으로 왔다. 20명가량의 신자들은 두 무리로 나눠 움직였다. 한 무리가 만산에서 성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다른 무리는 집을 지켰다. 성사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했던 신자들은 도중에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다.

“두 무리 중 두 번째로 오는 신자들은 남자가 두 명이고, 16살 처녀가 한 명, 13살과 11살 소녀 두 명, 9살 남자 어린이 한 명이었습니다. 이 연약한 무리는 단지 하루 만에 110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꼭두새벽에 집을 떠난 이들이 어떤 촌락을 지날 무렵, 장정 20여 명이 지팡이와 몽둥이를 갖고 나타나 어린 처녀와 소녀들을 겁탈하려고 덤벼들었습니다… 이 용감한 신자들은 비록 피로와 허기와 불의의 공격에 대한 충격으로 지쳐있었지만 불량배들로부터 구출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다시 걷기 시작해 저녁나절에야 의기양양하게 공소집에 도착했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공소에 도착한 이들을 맞이한 최양업의 마음은 기쁨과 연민으로 가득했다. 최양업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얼마나 서둘러 다함께 하느님께 깊이 감사를 드렸는지 신부님께서 상상해 보십시오”라고 전한다.

공소집에서 교리를 공부하고 있는 신자들의 모습을 그린 조희성 베드로의 작품.

■ 최양업에게 큰 기쁨인 신자들

신자들과 만나며 안타까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하느님을 알기 위해 교우촌을 찾아온 사람들, 열심히 전교해 많은 이들을 하느님 품으로 인도한 신자들, 교리문답 공부와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신자들을 보며 최양업은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했다.

한 청년이 간월이라는 마을에 찾아왔다. 이 마을에 색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이다. 읍내에서 걸어서 여러 날이 걸리는 간월에는 교우촌이 있었고, 몇몇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신앙을 실천하고 있었다. 읍내에서 온 청년이 갑자기 천주교를 알고 싶다고 찾아오자 교우촌 회장은 당황했다. 혹시 천주교인을 박해하러 온 사람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교우촌 회장은 젊은이의 진심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핑계를 대고 청년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몇 번을 찾아온 청년. 세 번째로 교우촌에 찾아온 날, 회장은 그에게 천주교 기본 교리를 설명해 주고 기도서와 교리문답 책을 전해줬다.

천주교를 알게 된 청년은 크게 기뻐하며 교우촌 회장이 준 책을 직접 손으로 베껴 쓰며 교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온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자기가 방금 받은 진리를 전했다.

이후 천주교를 실천하고자 고향 읍내를 떠나 간월 가까이로 이사를 온 청년. 그는 자신과 함께 세례를 받을 준비가 된 6명의 어른들을 공소집에 데려 왔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집안 식구들 모두에게 세례 준비를 시키고 그의 마을에 공소집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양업은 “청년의 일 뿐 아니라 마귀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가족들이 영세한 후 건강하게 잘 살며 기쁘게 농사를 짓는 일도 있었습니다”라며 “이 밖에도 이러한 예가 많습니다”라고 전한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