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무기 대신 백신과 식량을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6-14 수정일 2022-06-15 발행일 2022-06-19 제 3299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어린 학도병이 어머니께 쓴 편지의 첫머리입니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던 이우근 학도병의 편지는 이렇게 계속 이어집니다. “어머님,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천주교 신자인 이 소년의 편지에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나 적군을 무찔렀다는 승전의 기쁨이 아니라, 그가 아무리 적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그것도 같은 민족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전쟁이라는 비극에 대한 한탄으로 가득합니다.

어린 소년까지 전투에 내몰렸던 끔찍한 6·25전쟁은 이제 우리에게 70여 년 전에 멈춘 과거의 사건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고 정전(停戰)협정만 맺은 휴전 상태입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려면 종전(終戰)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지만, 남북 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질서는 점점 더 평화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올해만도 18번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며 군사적 위협을 계속하고 있고, 한미 연합군은 이에 대응해 군사훈련과 무력시위를 강화하며 한반도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북 모두 강력한 무기를 앞세운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흐름과 달리, 가톨릭교회는 그러한 무기 경쟁이 평화를 이루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우려합니다. “공포심에 기반을 둔 균형은 실제로 공포를 증폭시키고 민족들 사이에 신뢰 관계를 약화시킵니다.”(「모든 형제들」 262항)

남북 관계를 주로 정치ㆍ군사적 이해관계로만 판단하는 이들에겐 민족의 화해와 일치, 평화를 말하는 교회의 가르침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낭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핵무기로 무장해야 하고,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자들의 주장이야말로 전쟁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적군이 사람이며 같은 민족임을 잊지 않은 어린 학도병처럼, 우리 신앙인의 눈은 적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는, 증오와 적대감이 아니라 평화를 향한 시선을 키워가야 합니다.

지난달 북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공식 발표된 이후 한 달여 만에 400만 명 넘게 감염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랫동안 식량난을 겪으며 영양ㆍ보건 상태가 취약하던 북한 주민들에게 백신이나 치료제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상황은 아주 심각할 것으로 우려합니다. 그러나 인도적 차원의 식량과 의약품 지원에 대해서도 북한 정권을 돕는 ‘퍼주기’가 아니냐는 남쪽의 우려와 그 지원을 받으면 정권의 무능함이 드러날까봐 거부하는 북쪽의 경계 속에서 애꿎은 북한 주민들만 고통받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한창 확산하던 202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코로나19 휴전’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습니다. 당시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 턱슨 추기경도 팬데믹 동안 전 지구적인 휴전을 요청하며, 무기 구매 대신 보건 시스템을 지원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남북한이 서로 적대하며 무기를 강화하는 데 쓰는 비용을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구호와 보건의료 사업에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해 한국교회가 ‘백신 나눔 운동’을 추진했던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이 먼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형제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내어준다면,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이 배부르게 평화를 누리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