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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주일 특집] 회칙 통해 살펴보는 ‘이 시대의 교황’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6-21 수정일 2022-06-21 발행일 2022-06-26 제 3300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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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부조리 향해 묵직한 울림… 교회는 시대를 감싸 안았다

교회의 최고사목자인 교황은 여러 공식 문서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신자들과 소통한다. 그 중 ‘회칙’은 사목적 차원에서 공포되는 교황 문헌 중 가장 높은 교도권적 위치를 지닌다. 회칙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교회가 살았던 시대를 성찰하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들은 회칙을 통해 잘못된 사회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는가 하면, 우리 앞에 있는 아픔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안에 담긴 가치는 교회의 담장을 넘어 전 세계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교황 주일을 맞아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길을 알려준 교황들의 업적을 회칙을 통해 살펴본다.

레오 13세 교황

■ 레오 13세 교황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산업화 시대 균형잡힌 사회원리 제시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놨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부가 집중됐고, 다수의 사람들은 빈곤에 허덕였다.

당시 레오 13세 교황은 노동자들의 어려움이 소수의 자본가들이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에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반포하며,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이 회칙은 사회 문제 해결 방안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양극단을 피하는 균형잡힌 사회 원리를 제시하면서 소외 상태에 있는 가난한 이들, 특히 노동자 계급에 큰 관심을 표명했다. 또한 제도 개선과 함께 마음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회칙을 통해 강조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종교만이 사회악을 근절시킬 수 있으므로,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윤리가 재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모든 시민,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물질적인 복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포괄적인 안을 제시했다.

비오 12세 교황

■ 비오 12세 교황

<시대의 변화에 응답하다>

1957년 회칙 「놀라운 발명」 반포

새로운 대중매체 올바른 사용 강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대중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매체에 관한 교령」을 발표했다. ‘대중매체는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우리는 이 선물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교령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교회가 어떻게 적응하고 응답할 것인지를 가르친다.

이 문헌의 기초가 된 가르침은 비오 12세 교황이 1957년 반포한 회칙 「놀라운 발명」(Miranda Prorsus)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교황은 전쟁 중 영상 매체들이 사악한 정치적 책동에 이용되는 것을 목격했다. 대중매체의 선용과 악용의 양날을 직접 체험한 그는 그 막강한 영향력을 선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비오 12세 교황의 고민은 「놀라운 발명」이라는 결과물로 세상에 나왔다.

교황은 “우리 시대 인류의 자랑인 저 놀라운 기술적 발명은 비록 인간의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지만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선물”이라면서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이 직면하는 모든 질문에 대한 건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

■ 성 요한 23세 교황

<평화가 흔들리는 세상을 향해>

1963년 회칙 「지상의 평화」 반포

동서냉전 시대, 일치와 평화 호소

1961년 독일에는 베를린 장벽이 건설됐고, 이듬해에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구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쿠바 배치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면서 핵전쟁이 발발할 위기에 처했다.

전 세계의 평화가 흔들렸던 시기, 성 요한 23세 교황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중재를 시도했다. 주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고자 일치와 평화를 외쳤던 것이다.

평화를 향한 그의 간절한 외침은 1963년 4월 11일 반포된 회칙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에 담겼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이 회칙을 통하여 정치 공동체들 간의 상호관계, 세계 정치공동체의 임무와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정치 공동체는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개인, 가정, 그리고 중간 사회 집단을 다스려야 하며 국제 공권력 역시 이 원리에 따라 맡은 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화의 건설을 위한 거대한 과제로 진리, 정의, 사랑, 자유 안에서 사회생활의 상호 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생명 존중과 사랑을 호소하다>

1995년 회칙 「생명의 복음」 반포

모든 인간생명 가치 존중 촉구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폐해도 생겼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등장한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러한 현실에 침묵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졌다. 1995년 반포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인간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길 촉구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절박한 호소가 담겨있다.

교황은 회칙을 통해 인간생명에 대한 전례 없는 위협과 ‘죽음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한 우리에게 모든 인간생명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복음, 유한한 시간 속에서 그 생명이 갖는 위대함과 고귀함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위협적 환경이 문화적, 사회적 및 정치적 차원에서의 매우 강력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책임에만 맡겨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교황은 명확하게 ‘죄의 구조’,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생명을 거스르는 음모’에 대해서 고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 프란치스코 교황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며>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생태위기 해결 위한 인식 전환 당부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담은 회칙을 반포했다. 교황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겼던 사람들에게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교황은 생태계의 파괴가 철저하게 가난한 이들, 남반구의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과 희생을 가져왔고, 기술의 발전은 지식과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편중돼 왔음을 강하게 지적한다. 또 자연 환경의 파괴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과 지배로 이어지고, 곧 인간 생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회칙을 통해 경고한다.

이처럼 「찬미받으소서」는 환경 위기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온전한 생태학’의 개념을 담고 있다. 교황은 생태위기 해결 방안으로 ‘회심’, ‘생태적 회심’을 제시했다. 이러한 회심과 함께 교황은 책임 있는 이들을 ‘대화’와 ‘행동’으로 초대했다. 교황은 “특정 이해관계나 이념들이 공동선을 침해하지 않도록 솔직하고 개방적인 논의를 위해서 국가 지도자와 정부들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한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