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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신앙의 선물 / 안봉환 신부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
입력일 2022-06-21 수정일 2022-06-21 발행일 2022-06-26 제 330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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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첫 본당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80대 후반의 막달레나 자매님이 선종하셨다. 그 본당에서 전남 나주에 있는 신학교로 떠날 즈음 그분한테서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마흔 중반에 이르러 한 아들은 교통사고로, 다른 아들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단다. 두 아들을 잃어버린 슬픔과 고통에 오랫동안 짓눌려 살다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소중한 아들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잃어버린 어머니 마리아의 슬픔과 고통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막 부임한 마흔 중반의 본당 신부를 보니 마음속에 묻어둔 두 아들이 더욱더 생각나더란다. 저녁마다 불이 켜져 있는 사제관을 보면 마음이 그리 편하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앞으로는 두 아들이 생각나거든 전화하셔서 “아들!”하고 부르시라고 했고 그녀를 “어머니”로 정성껏 모시겠다고 했다.

사실 모태에서부터 신앙을 선물로 주신 친어머니는 이미 2008년 6월 어느 날 평안하게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첫 본당에서 만난 또 다른 어머니! 그리하여 신앙의 끈으로 엮어진 새로운 모자 관계가 형성되었다. 전남 나주에 있는 신학교에서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가 있는 서울에서든 전주에 갈 기회(?)가 있으면 그분이 살고 계신 곳을 찾아뵈어 단 몇 십 분이라도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기도하고 안수해 드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 한 번 오더라고∼잉.”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생각하며 찾아뵈니 손을 내밀어보라고 하신다. 손가락 둘레를 이리저리 실로 재더니 선물을 하나 해 주고 싶더란다. “어머니! 웬 선물 타령이오?” “아니∼ 새 본당 신부님이 강론할 때마다 손을 자주 움직이는데∼ 손가락에 뭔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끼고 있더라고∼잉. 가만히 보니 금반지여. 근데∼ 울 아들 손가락엔 그런 반지가 없더라고∼잉. 그래서 묵주반지라도 하나 해 주려고. 요기 좀 봐봐, 내 손에 차고 있는 이 시계 줄이 금으로 되어 있잖여. 이걸 맡기면 묵주반지를 만들어 준다고 했어. 다 알아봤제∼잉.”

하지만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자 그로부터 5년 동안 전화로 통화하거나 찾아뵐 때마다 묵주반지 문제로 시달렸다. 올해 초에는 결국 그분에게 손가락을 맡겨드렸다. 손가락 둘레를 실로 재면서 어린이처럼 매우 기뻐하셨다. “아들! 묵주반지가 도착했으니 서둘러 오셔∼잉.” 본당의 분주한 일(?)로 하루 이틀 미루다가 두 주간이 지난 후에 찾아뵈었다. 허리가 더욱 휘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손가락에 묵주반지를 조심스럽게 끼워주시며 중얼거리신다. “하이고, 아들한테 묵주반지를 선물해주니 드디어 내 속이 편하네∼잉.” 하루하루가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분을 보면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고 정성껏 안수해 드린 다음 성당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근처에 있는 요양원 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신부님! 혹시 할머니의 딸한테 전화가 오지 않았나요? 식사를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쓰러져서 급히 대학병원으로 실려 가셨데요.” 서둘러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뚜우우∼’ 신호음만 들렸다. 할머니의 딸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던 요양원 원장이 그분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할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셨대요.” 그리고 며칠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대요.”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고인을 위해 미사를 봉헌해 드렸다. 집안 신자라고는 군대에서 세례받았다는 손주 한 명뿐! 믿지 않는 두 딸에게 최근에 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묵주반지를 보여주었더니 대성통곡을 한다. 그런데 왜 묵주반지를 그렇게 선물로 주려고 하셨을까? 아들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물려준 신앙의 선물이 아닐까? 오늘도 묵주반지를 꺼내 그분을 위해 성모님께 전구한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