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38)살아있는 전례를 위하여②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6-28 수정일 2022-06-28 발행일 2022-07-03 제 330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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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미사로 봉헌하는 건 그리스도 닮은 방식으로 산다는 것
의미와 신비 드러난 예식 통해
신앙인은 말과 행동과 태도를
그리스도 닮도록 변화시켜야

‘2014 전국 젊은이 성령축제’ 미사에서 청년들이 율동과 함께 성가를 부르고 있다. 생각과 마음 없이 빈 몸으로 행하는 형식적 미사 참여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과 마음과 몸으로 미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참여한다는 의미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미사의 중요성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전례헌장, 10항) 가톨릭 전례의 핵심은 미사(성체성사)다. 사제들에게 미사는 사목 활동에 있어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한다. 강론을 잘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미사를 드리는 일이 사제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사목의 영역 안에는 다양한 일과 역할과 직무들이 있지만, 미사가 사목 행위의 정점이라는 뜻이다. 신자들에게도 미사는 핵심이다.

신앙생활은 여러 형태로 수행된다. 다양한 신심 행위들에 참여하기도 하고, 레지오마리애, 꾸르실료, 성경 공부 등 교회 안의 숱한 단체에 가입해서, 친교와 교육과 봉사의 삶을 산다. 하지만 신앙생활의 정점 역시 미사 참여다. 사목과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는 핵심 장소인 본당의 중요한 기능과 역할은 그 지역 공동체의 미사 거행이다. 이처럼 미사는 사제의 사목, 신자들의 신앙생활, 본당 공동체의 중심이자 핵심이다.

미사에 대한 참교육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미사에 대한 인식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 차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아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 앎은 느낌을 촉발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미사가 신학적으로 이러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경문과 동작과 상징 안에 이러저러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아무리 교육을 해도, 실제 미사의 현장에서 그것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저 피상적인 앎으로 끝나고 만다.

미사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신학적(이론적) 설명과 교육보다 실제 미사의 현장에서 거행자(집전자와 참여자)들이 어떻게 미사를 머리와 마음과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학적 관찰과 분석이 더 절실히 요청된다.

■ 미사의 현실과 풍경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가 정말 생생하고 역동적인 모습일까? 솔직히 말해보자. 실제 미사의 자리에서 성직자들이 무엇을 느끼고 체험하는지, 신자들이 어떻게 체험하고 반응하는지. 미사 안에서 생각과 마음과 몸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있는지. 즉, 미사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은총을 온 마음과 온몸으로 느끼고, 그 은총의 힘으로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서 삶을 하느님께 드리는 미사로 봉헌하고 있는지.

전례의 모습이 신앙의 모습이다. 미사의 모습은 신앙의 모습을 반영한다. 실제 미사의 풍경이 형식적이고 추상적이면 신앙의 모습도 추상적이고 형식적일 가능성이 많다. 미사 참여가 능동적이면 신앙생활의 모습도 능동적일 확률이 크다. 우리의 신앙이 혹시 형식적이고 관습적인 모습이라면 아마도 우리는 습관적이고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미사의 모습과 신앙의 모습은 늘 함께 간다. 오늘날 우리가 거행하는 미사의 현실과 풍경이 정말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모습일까? 우리 미사의 구체적 현실을 조금 더 냉정하게 분석하고 진단할 필요가 있다.

■ 머리와 가슴과 몸으로 참여하는 미사

어느 저명한 가톨릭 전례 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미사는 하느님의 현존과 우리의 현존이 교차하고, 하느님의 이야기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만나는 장이다. 주님의 현존과 주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존과 우리의 이야기도 중요하다. 생각과 마음 없이 그저 빈 몸으로 행하는,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미사 참여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과 마음과 몸으로 미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참여한다는 의미다. 미사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네 군데서 표현된다. 성가, 참회 예절, 신자들의 기도, 강론이다. 성가와 강론은 정말 중요하다. 인간은 노래를 통해 정서를 표현하고 공감과 연대를 체험한다. 한국교회는 신자들의 삶과 사연을 담아내는 성가를 만들어야 한다. 사제는 강론 안에서 하느님의 이야기와 신자들의 이야기가 만날 수 있게 해야 한다.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참회와 기도다. 한 주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에 대해 성찰하고, 주님께 올리는 자신만의 간절한 기도를 갖고 미사에 참여할 때, 그 미사는 생동적인 미사가 된다. 그저 가슴을 세 번 치며 습관적으로 경문을 외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미사 안에서 용서의 은총을 깊이 체험할 것이다. 신자들의 기도 시간에 자기 내면의 기도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 감사, 탄원, 청원, 전구, 그 어떤 형식의 기도이든 그 기도가 하느님과 우리를 깊이 연결한다. 자기 성찰과 내면의 기도, 이 두 준비만으로도 미사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사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아니면 그저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 일상의 예식화(ritualization), 삶의 성사화(sacramentalization)

미사는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일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67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건과 신비를 기억하고 기념한다. 미사의 출발은 신비와 사건이다. 예식은 신비와 사건을 기념하는 형식이다. 즉, 미사의 핵심은 신비와 사건에 있는 것이지 예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 안에서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미사 안에서 예식과 사건과 신비는 언제나 연결된다.

형식(예식)은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내용은 언제나 보이는 형식을 통해 그 의미와 신비를 드러낸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 같은 것이다. 형식은 언제나 내용(의미, 지향, 목적)을 담고 있을 때 살아있는 것이 된다. 형식 그 자체에만 얽매이면, 즉 형식 그 자체를 유지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면, 형식은 자칫 굴레와 억압이 되기도 한다. 형식은 늘 변화되고 쇄신되어야 한다.

형식(예식)은 필요하다. 사건과 신비는 예식을 통해서 선포되고 전달된다. 형식을 갖추지 못한 내용은 제멋대로 되기 쉽다. 삶의 형식을 놓쳐버리면 방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의미와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예식이 필요하다. 삶에 있어서 생각과 마음과 욕망과 의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예식(의례)이 필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기 일상의 삶을 예식화 하는 일은 중요하다. 삶의 예식화는 부정적인 의미의 형식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인에게 일상을 예식화 한다는 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과 태도를 예수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예식, 형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우리 삶을 주님께 드리는 미사로 봉헌한다는 뜻이다. 보편 사제직의 진정한 의미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