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14주일 - "사랑하고 섬겨라”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예수님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입력일 2022-06-28 수정일 2022-06-28 발행일 2022-07-03 제 330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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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66,10-14ㄷ / 제2독서  갈라 6,14-18 / 복음  루카 10,1-12.17-20
빈손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신 주님
생각과 의지, 명성과 편안함 대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삶 살아야

랭부르 형제 ‘파견되는 사도들’.

■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너무나 뜻밖입니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왠지 제 생각에는 제자들을 보내는 거면, 뭔가 많이 챙겨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요. 뜻밖에 주님은 빈손으로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예전에 제가 시골 본당에 있을 때 한국 외방 선교회 신학생이 공소 체험을 왔었습니다. 지금은 신부님이 됐는데요. 그분과 이야기할 때도 저는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나중에 선교 나가서 일을 하려면 후원회도 조직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을 많이 알아야겠네요.” 그분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뭔가 베풀어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그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때는 마음으로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요.

마음 한켠에 그러한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빈손으로 보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낯선 곳에 가는 것이면 이방인이 되는 것일 텐데요. 그러면 ‘힘도 있고 돈도 좀 있고 능력도 있어야 도움도 되고 일도 해 나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 나는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텃밭에 씨앗을 사다가 심었습니다. 심으면서는 ‘이게 싹을 틔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비가 시원하게 오고 하루 이틀 지나니까, 작은 새싹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보리는 얼마나 힘이 센지 흙덩이들을 밀치고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워서 볼 때마다 “와~”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새싹을 틔운 이후에도 자라고 성장하는 야채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 신기합니다.

땅속의 씨앗과 땅 위의 나무, 그 두 가지 그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 세상 만물이 내 생각 그 이상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오늘 아침 기도하면서 그 부분이 새삼 신기해서 한참 머물러 있었습니다.

씨앗은 나무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씨앗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하느님은 우리의 씨앗에 나무가 있고, 우리 생각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씨앗은 그것을 알고 죽을 수 있을까요? 어떤 씨앗은 땅속의 세상이 만족스러울지도 모릅니다. 땅속이 안전과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내 몸, 생각, 의지, 명성, 그리고 세상이 편안함을 주고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아름답고 최고인 것으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마치 ‘싹을 틔우는 씨앗을 볼 때 자아내는 감탄’과도 같습니다. 내 몸과 생각과 의지와 명성과 세상에 죽고 그 너머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모습이 주님에게 가장 큰 기쁨이고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실 모습인지도 모르겠죠.

우리는 그 너머를 생각하며 세상에 대해 죽고 있을까요? 죽어야 할 목록을 적어 보다가 ‘명성’이라는 단어가 꽤 오래 제 안에 머물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피정하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굉장히 불편하게 여겨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다 이뤘다고, 또 성공했다고 하시는데 뭔가 불편했습니다. 왜 불편할까, 궁금해 하며 반복해서 기도하는데, 문득 제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성공은 그런 성공이 아니었던 겁니다. 더 중요한 자리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여러 본당을 다니고 지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따라다니는 그런 모습이 성공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성공을 바라보았습니다. ‘십자가 죽음, 그리고 그 곁에 선 제자 한 사람과 어머니. 그것이 성공이라면’ 그걸 바라볼수록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성공의 모습이 힘을 잃고, 그분이 보여 주시는 성공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쓰시는 대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예전에 제가 있던 섬 본당에는 신자들이 많이 기억하는 외국인 선교사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을 초대해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식사 중에 대화를 나누면서, 신자들이 그 신부님을 그렇게 많이 기억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 신부님이 몇 번을 반복하신 단어 중에 하나가 ‘관심과 사랑’입니다.

신부님의 삶이 그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30여 년 전에 섬 본당에 공소가 많았는데요. 신부님은 그 공소들을 정말 자주 방문하셨습니다. 혼자도 많이 다니셨지만, 주교님이 본당에 오실 일이 있으면, 주교님을 모시고 공소를 방문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섬에 사는 신자 분은 “아주 오랜만에 미사를 봉헌해 본다. 주교님을 처음 본다”고 감동하셨다고 합니다. 다른 공소 신자 분들도 신부님을 항상 공소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방문하시는 분으로 기억합니다.

또 병자 영성체를 매주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니까 신자들이 본당에 아무 불만이 없었고요. 자주 방문한 그 환자 교우의 가족들이 신자가 됐다고 합니다. 또 신부님이 자주 가시고 인사하시던 길가에 모든 분들이 신자가 된 적도 있고요. 그런 걸 보면 정말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빈손으로 보내는 뜻이 그 신부님 삶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내면서도 세상의 힘과 권력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과 섬김으로 다가가기를 바라시리라 생각합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