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06-28 수정일 2022-06-29 발행일 2022-07-03 제 3301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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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하신 지 12년… 그분이 남긴 씨앗은 여전히 열매 맺고 있죠”
다큐 개봉 후 이태석 영향력 ‘목격’
톤즈 현지에 의료·교육 지원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들 삶이 극적으로 변화

불교 신자인 본인 삶 또한 영향 받아 
이태석 신부 정신 알리려 봉사·헌신

이태석재단에서 봉사하고 있는 구수환 이사장이 고(故) 이태석 신부의 사진 앞에 서 있다.

‘울지마 톤즈’로 고(故) 이태석(요한) 신부를 온 나라에 알린 사람. 자신은 불교 신자이면서도, 그리스도를 따른 이 신부의 정신을 퍼뜨리려 애쓰는 사람. 최근 「우리는 이태석입니다」(344쪽/1만6000원/북루덴스)를 출간해 이 신부로 말미암아 변화한, 그리고 변화할 세상을 알리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을 만났다.

종군·고발 전문 프로듀서, 이태석 신부를 만나다

“이태석 신부님은 제가 저널리스트로서 살아오면서 꿈꿨던 그런 세상을 실질적으로 사신 분이에요. 이 신부님의 삶은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종교가,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지를 다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이 신부님의 삶을 놓을 수가 없는 거죠.”

구 이사장은 KBS 프로듀서로 ‘일요스페셜’, ‘추적 60분’, ‘세계는 지금’ 등을 제작하며 30여 년간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을,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현장을 찾아다녔다. 세상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무엇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신념에서였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유명 프로그램을 통해 불의를 고발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을 이루지도 못했고, 구 이사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그 자리를 떠나야했다. 그러던 중 만난 것이 이태석 신부였다.

“사람이라면 두려울 텐데 왜 전쟁터인 수단에 갔을까?”

그 질문 하나가 구 이사장을 ‘이태석’이란 사람에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본 구 이사장은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그 생생한 두려움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동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도, 그리고 그 현장에 남겨진 사람들의 심정도 알았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이 신부의 활동과 톤즈의 현장을 담아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울지마 톤즈’였다.

구 이사장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고 전쟁터에 가는 종군기자의 마음과 이 신부님의 마음이 같았으리라 생각했다”며 “이 신부님을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톤즈에서의 생활을 빠르게 해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태석 신부로 변화한 세상

“30여 년 저널리스트로 꿈꿨던 세상을 공영방송에서 그 어마어마한 프로그램 가지고 한번 해보려했는데 안됐어요. 그런데 이 신부님의 삶을 담은 영화 한 편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고 10년이 지나서보니까 그 변화가 구체화되고 있어요.”

이 신부는 성무를 수행하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식량을 나눠주는 등 바쁜 일과 중에도 홀로 진료소를 운영했다. 톤즈의 유일한 진료소였다.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난 뒤, 병원 하나 없던 마을 톤즈에 의대생만 57명이 탄생했다. 의대에 합격한 이 신부의 제자들은 이 신부가 그랬듯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의료 봉사에 뛰어들었다. 이 기적과도 같은 결과에 구 이사장은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단언했다.

구 이사장은 “이 신부님이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셨고, 10년 후인 지금, 아이들이 신부님과 같은 길을 걷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이건 기적이 아니다”라면서 “이 신부님처럼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면 받아들이는 사람의 삶에 좋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삶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삶이었다”고 말했다.

변화는 이 신부의 제자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 신부의 삶에 감동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신부의 뜻을 잇기 위해 이태석재단에 정성을 보탰다. 재단은 그 정성을 바탕으로 이 신부가 돌보던 제자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남수단에 ‘이태석’이란 이름이 담긴 초등학교를 세우고, 이 신부의 제자들이 톤즈 지역 병원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기기를 후원하고 있다. 덕분에 이 신부가 하던 일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더 큰 결실을 맺어 가고 있다.

“전에는 ‘이 신부님이 대단한 분이셨습니다’라고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 신부님처럼 사세요’라고 이야기해도 믿기 시작해요. 이 신부님의 삶이 그저 영화에만 있는 감동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제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태석 신부의 ‘섬김 리더십’

지금은 이처럼 자신 있게 이 신부의 삶이 가져온 변화를 말하는 구 이사장이지만, 사실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려고 누구보다 노력한 사람도 구 이사장이었다.

‘울지마 톤즈’가 흥행한 후, 구 이사장은 오히려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과하게 이 신부를 ‘영웅’으로 이상화시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스스로 검증하고, 또 검증했다.

그러다 이 신부를 다시 만난 것은 뜻밖에도 북유럽이었다. 행복 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의 정치를 취재하면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이 신부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구 이사장은 특히 국민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23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낸 타게 엘란데르 전 총리의 예를 들었다. 엘란데르 전 총리는 국민의 세금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옷 한 벌, 구두 한 켤레까지도 아끼며 국민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북유럽 정치인들의 정치 이유는 국민들의 행복에 있었어요.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의 삶이, 이 신부님의 삶과 꼭 닮아있었어요. 이 신부님과 닮은 삶의 모습으로 구현된 사회의 모습을 보고, 이 신부님의 길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구 이사장은 이렇게 이 신부와 닮은 삶의 모습을 “섬김 리더십”이라 불렀다. 구 이사장은 섬김 리더십을 구체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경청, 진심을 다해 대하는 자세, 자기 것을 다 내려놓는 무욕,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리고 “이 5가지가 국경, 이념, 종교를 떠나 이 신부님의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 구 이사장은 이 신부의 섬김 리더십을 더욱 널리 퍼뜨리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종교나 단체를 불문하고 다양한 곳을 찾아 강의하고 있다. 또 청소년을 위한 저널리즘스쿨을 운영하면서 저널리스트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이 신부의 모습 중 ‘공감’을 전하고 있다. 또한 올해 안에 ‘이태석 학교’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태석 학교’는 이 신부의 자취를 순례하고, 이 신부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이 신부의 삶과 정신을 서로 나누는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

구 이사장은 이사장직을 맡고 있지만, 재단에서 인건비를 비롯한 일체의 활동비용을 받고 있지 않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이 신부처럼 살고자 하는 실천의 일환이다. ‘이사장’이라는 이름의 봉사를 하고 있는 구 이사장은 이를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이 신부처럼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다.

구 이사장은 “제가 이 신부님처럼 살지 않으면 사람들이 이 신부님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 신부님처럼 살면 행복해지는가’, ‘사랑의 힘은 대단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 지금도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님 식으로 살다 보니까 진짜 개인적으로 얻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삶이 행복하다는 거죠. 행복하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어요.”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알리려 「우리는 이태석입니다」를 발간한 구수환 이사장이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