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14)춘천교구 죽림동 묘역 성지와 주교좌죽림동성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07-05 수정일 2022-07-06 발행일 2022-07-10 제 330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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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파괴돼 재건… 긴 역사 오롯이 품고 있는 지역 신앙의 요람
등록문화재 제54호로 지정된 곳
교회 미술품 다채롭게 소장해 눈길
성당 뒤편엔 순교·성직자 묘역 조성  

주교좌죽림동성당.

2022년은 6·25전쟁(1950.6.25~1953.7.27)이 발발한지 72주년이 되는 해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잊히고 있다. 그러나 참전 용사나 전사자 유가족들에게는 여전히 깊은 상처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하고 고통을 겪는다. 삶의 터전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무고한 이들이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역사 안에서 전쟁만큼 야만적인 행위는 없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종식을 위한 노력과 함께 세상의 평화를 위해 특별히 기도를 바친다.

춘천교구는 깊은 산과 아름다운 호수, 드넓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북쪽에 있어서 6·25전쟁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교구의 여러 성당에서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전쟁의 흔적과 아픈 상처를 볼 수 있다. 아울러 전쟁 때 순교한 성직자와 신자들의 행적도 곳곳에 남아있다. 우리 교회에서 순교자들이라고 하면 흔히 조선시대 후기에 순교한 분들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춘천교구사를 살펴보면 6·25전쟁 중에 순교하거나 생명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교좌죽림동성당 구역의 순교자·성직자 묘역 성지도 이를 알려준다.

약사리 언덕에 있는 죽림동성당(주보: 예수성심, 등록문화재 제54호)은 춘천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낮은 언덕에 서 있다. 이 성당의 역사는 100여 년 전인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죽림동성당의 모체인 곰실공소(현 춘천시 동내면 소재)는 교구의 요람으로 엄주언 회장(말딩·1873~1955)이 세웠다.

그는 우연히 접한 「천주실의」와 「주교요지」에 감명 받아 천진암에서 세례를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1920년 9월에 그가 만든 공소가 춘천 지역 최초 본당으로 승격하여 김유룡 신부(필립보·1892~1972)가 부임하였다. 엄 회장과 교우들이 춘천 중심부에 진출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 1928년 현재 죽림동에 자리를 잡았다.

죽림동 순교자·성직자 묘역 성지에서 바라본 성당.

죽림동성당 뒤편에는 교구 순교자·성직자 묘역(춘천교구 사적)과 순교자 현양비가 있다. 이곳에는 춘천교구에서 사목하다가 선종한 사제들과 목자로서의 소명을 수행하다가 희생된 순교자 등 25분이 계신다. 2017년 9월 순교자 성월에, 제7대 교구장 김운회(루카) 주교는 한국전쟁 순교자들이 묻힌 죽림동 묘역 성지 선포 교령을 발표하였다.

아일랜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이하 골롬반회)에서 파견한 선교사제들이 춘천교구 초기에 헌신적으로 사목하였다. 그들 가운데서 1950년 전쟁 때 순교한 사제들이 묘역에 잠들어 있다. 소양로본당의 고 안토니오 신부(Anthony Collier·1913~1950), 삼척본당의 진 야고보 신부(James Maginn·1911~1950),묵호본당의 라 바드리시오 신부(Patrick Reilly·1915~1950)를 만날 수 있다.

또한 북한 지역에서 순교하여 유해를 모실 수 없는 아래 사제들을 위해 가묘를 조성하여 기도하고 있다. 양양본당의 이광재 신부(티모테오·1909~1950)는 원산으로 끌려가 순교했으며, 골롬반회 손 프란치스코 신부(Francis Canavan·1915~1950)는 압록강변 중강진 포로수용소에서 병사했다. 김교명 신부(베네딕토·1912~1950), 백응만 신부(다마소·1919~1950)는 북한 지역에서 순교하였다. 이곳에는 6·25전쟁 때 ‘죽음의 행진’ 속에서도 살아남아 교황사절과 제2대와 제4대 춘천교구장으로 헌신한 구인란 토마스 주교(Thomas F. Quinlan·1896~1970)와 역대 교구장의 묘도 있다.

순교자·성직자 묘역에서 기도한 후, 다시 마당으로 나오면 작지만 견고한 모습으로 서 있는 죽림동성당이 반긴다. 골롬반회가 건축한 대표적인 석조 건축물로 뾰족한 종탑이 성당을 찾은 사람들을 품어주며 반긴다. 종탑 아래에 있는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폭 11m, 길이 43m 규모의 성당 내부가 눈앞에 펼쳐진다. 기둥 없는 내부와 아치형 천장이 단순하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이 성당은 1949년 기공식 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전쟁이 일어나 크게 파괴되었다. 그러나 전란 중임에도 1951년 복구를 시작하여 1956년 6월 성당 주보인 예수 성심 대축일에 봉헌식을 하였다.

2000년 대희년을 앞두고 최초의 한국인 교구장 장익 주교(십자가의 요한·1933~2020)는 1998년에 주교좌성당을 중창(重創)하였다. 이 작업에는 가톨릭미술가회 중진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봉사하였다. 성당을 꾸미는데 참여한 작가는 최종태, 최의순, 이춘만, 최영심, 주예경, 김영섭, 김 데레시타 수녀를 비롯한 여러 명이었다. 중창 때에 외부 성모자상(김세중 원작, 1970년, 백시멘트)도 이춘만 작가가 화강암 애석으로 복원하였다. 대규모 보수 작업을 통하여 죽림동성당은 ‘한국 가톨릭 미술의 보고(寶庫)’로 거듭났다. 죽림동성당처럼 아름다운 교회 미술품을 많이 소장한 곳은 서울대교구의 혜화동성당이다.

대희년을 바라보면서 죽림동성당을 중창했지만 구내의 순교자·성직자 묘역과 주변 환경을 다 꾸미지 못하였다. 그래서 2013년에는 교구장 김운회 주교의 뜻에 따라 ‘죽림동성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새롭게 변모하였다.

먼저 성당 앞에 직사각형 폭 30m, 길이 60m의 마당과 회랑을 만들어 성당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회랑의 설계는 ‘그림건축’ 임근배 소장이 맡았다. 마당은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준비하는 공간이며, 좁은 성당의 기능을 확장시키는 역할도 한다. 마당에서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잔디 한 가운데 있는 길을 따라 갈 수 있다. 이 길은 십자가의 횡목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성당으로 향하는 또 다른 길은 마당 둘레의 지붕 덮인 회랑이다. 회랑 길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어서 각 처 앞에 머물며 기도하는 교우들도 있다. 또한 회랑에 성화나 사진을 걸어 둘 수 있어 간이화랑 역할도 가능하다. 올해 6월 25일 전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북녘 본당 사진전’을 열어 교우들에게 잊힌 본당을 떠올리게 했다.

마당 입구 양쪽에는 성당 가운데 종탑과 같은 모양의 목재 종탑이 두 개 있다. 종탑 한곳에는 승강기가 있고 맞은편에는 전망대가 있어서 성당 전경과 춘천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지금부터 반백년 전인 1956년 봉헌식을 하고 대규모 보수와 성역화 작업을 거치면서도 죽림동성당은 원형을 잘 보존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춘천교구 죽림동성당 내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