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40)공부하는 신앙 – 두 번째 이야기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7-26 수정일 2022-07-26 발행일 2022-07-31 제 3305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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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앞에서 자기 삶과 신앙 돌아보는 공부 모임 필요하다
다양한 공부 소모임 활발해야
본당 공동체에 활력 줄 수 있어
속지주의적 원칙 고수하지 않고
취미와 취향 등 동질성 고려해야

■ ‘신학서원’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

신자들과 함께 공부 모임을 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두 그룹의 신자들과 한 달에 한 번, 공동 사제관 빈방을 이용해서 진행하고 있다. 처음의 내 계획은, 신학서원과 신앙 공부 모임(혜연공동체)을 별개의 형태로 구성하는 것이었다. 신학서원은 내가 직접 개입해서 함께하는 형식으로, 혜연공동체는 자료만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생각이었다. 신학서원은 신앙과 교회에 대해 학문적 관심을 가진 신앙인들이 신학을 집중적으로 함께 탐구하는 공부 모임이다. 혜연공동체는 교회의 신심 모임과 세속의 독서 클럽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신학서원과 혜연공동체, 둘 다 신앙의 올바른 의미와 수행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신앙 운동, 공부를 통해 신앙과 영성의 성숙을 추구하는 신학 운동, 공부하는 공동체의 형성을 통해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꿈꾸는 교회 운동을 지향한다. 강의 중심이 아니라 함께 읽고 토론하고 대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지방 소도시에서 학문적인 모임을 함께 할 구성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선 신학서원과 신앙 공부 모임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의 전반부에는 짧은 신학 강의를 내가 하고, 후반부에는 기도와 독서 모임 형식의 토론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형태로 시간표를 구상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신앙과 신학에 관한 공부에 목말라 있었던 신자들이 예상외로 많았다. 대도시 교구와는 달리 농촌 교구에는 신앙 공부의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 도시 교구에는 다양한 성경 공부 모임이 개설되고 교리 신학원 형태의 신학 공부 모임도 있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에는 성경과 신학에 관한 기본적인 공부와 배움의 공간이 제대로 갖춰있지 못하고, 인문적 교양에 대한 지적 훈련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잘 없다. 도시중심의 삶이라는 자본주의 문명의 폐해가 신앙의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

■ 본당의 현실과 신앙 공부

본당이 수행해야 할 여러 가지 기능 가운데, 전례와 성사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일은 신앙교육이다. 물론 전례 안에 신앙교육 기능이 존재한다. 하지만 신앙의 교육과 성숙은 다른 여러 방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오늘날 본당은 미사 거행하는 곳으로만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저 미사만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이 모여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던 본당의 모습은 이제 옛 추억이 되었다. 본당 안에 제대로 된 신앙교육이 부재하고 있다. 단순한 사회적 친목이 아닌 진정한 공동체적 친교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이웃과 세상을 향한 헌신과 봉사 모습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본당에서 전례와 성사, 관리와 행정만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본당 공동체는 당연히 전례 공동체다. 하지만 전례 외에 다른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본당은 활력을 잃어갈 위험이 있다. 본당 공동체 안에 다양한 작은 공동체 모임이 활발해져야 전체로서의 본당 공동체는 활기를 갖는다. 본당의 기초 소모임 역할을 담당했던, 레지오와 구역 반 모임이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대안으로 추진되었던 소공동체 모임도 여전히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사람들이 모여야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데, 본당 공동체 안에 사람들이 예전처럼 잘 모이지 않는다.

새로운 형식의 본당 소모임이 필요하다. 속지주의적 원칙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취미와 취향과 기질의 동질성을 고려하는 모임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성경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신앙 공부 모임도 요청된다. 사실, 공부를 통해 신앙과 삶의 성숙을 추구하는 신자들도 많다. 신앙 공부에 대한 갈증을 본당 공동체가 채워주지 못하니, 이웃 종교의 공부 모임에 참여하기도 한다. 어떤 신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유명 스님의 경전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다양한 형식의 신앙 공부 모임이 활발하게 존재하는 본당을 상상하고 희망한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수행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많은 부분이 성직자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신자들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참여 공간이 부족하다. 자발적인 신앙 공부의 방식보다 전례에 피동적 참여 형식으로 신앙 수행이 이루어지는 경향도 강하다. 가톨릭교회의 종교적 신앙의 수행은 사유와 공부와 체험보다는 삶의 형식을 강조한다. 단순 범주화의 위험과 오류를 내포하지만, 깨달음의 사유와 공부를 강조하는 불교, 신앙 체험을 강조하는 개신교, 종교적 삶과 형식을 강조하는 가톨릭으로 구분해볼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종교는 사유(이성, 인식, 공부)와 체험(마음, 감정, 정서)과 몸(의지, 삶, 종교적 행위)의 차원을 포함하지만 말이다.

개별적 자유와 자율적 개체성을 강조하는 시대다. 공통의 관심사와 공동체적 비전이 사라진 세상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타자의 인정을 추구하고 친밀성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여전히 요청하고 있다. 개인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공동체 운동이 역설적으로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본당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은, 본당 안의 소모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본당 모임들이 친밀성과 소속감을 제공하지 못하고, 건강한 인정 욕망을 채워주지도 못하고, 신앙 성숙과 자기 계발에도 별로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 공부하는 신앙은 성찰하는 신앙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수행해온 신앙방식의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의 기쁨은 규범과 의무에 따르는 수동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와 노력 안에 있다.

감정과 욕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 차분한 생각과 성찰보다는 조급한 감정과 물질적인 욕망의 이해관계가 더 중요시되는 세상이다.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반응으로서의 감정과 물질문명 속에서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은 사람들에게서 성찰하는 힘을 빼앗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잘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하느님 앞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 즉 기도의 시간을 가질 마음의 여유도 갖지 못하고 있다. 그저 감정의 만족과 욕망의 채움에만 몰두하며 살아간다.

성찰하는 신앙인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 삶과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는 사람이다. 세상 모든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섬세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다. 즉, 일상 안에서 초월성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신앙은 희망과 사랑 속에서 그 본질을 드러낸다. 성찰하는 신앙인은 숱한 의심과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성찰하는 신앙을 위해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신앙 공부 모임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시절이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