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짧고 유익한 휴가 / 안봉환 신부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
입력일 2022-08-23 수정일 2022-08-25 발행일 2022-08-28 제 330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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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건너편에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등하교 때마다 어린 친구들의 신나는 소리가 창문을 통해 들려온다. 그런데 방학을 맞이하면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뜨거운 여름을 더욱 달구는 참매미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방에만 머물러 있기에 너무 지친 많은 이들이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 바람이 불고 그늘진 곳을 찾아 휴가를 떠난다. 성당 안에 머물러 있던 신자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그들의 자리가 휑하니 비어 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실제 근로시간은 190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인 OECD 국가 가운데 34위에 해당된다. OECD 국가 가운데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이며 그들의 실제 근로시간은 1332시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집계를 시작한 2016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월평균 근로일수는 19.7일이며 하루 8시간 정도를 근로시간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일을 하는 만큼 휴식시간이 늘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신부님! 휴가는 언제 가실 거예요?” 요즘 많이 듣는 질문이다. 휴식의 본래 의미는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가장 깊숙한 내면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주님께서 지친 사도들을 부르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참조) 잠시 생활 터를 벗어나 조용한 가운데 기도하고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피정만큼 좋은 것은 없으리라.

작년에는 본당 청소년 여름 신앙캠프를 포기해야만 했다. 교리교사들은 올해는 방학을 맞이한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육체적 정신적 휴식을 누리게 할 것인지, 신앙 체험과 좋은 추억을 통해 신앙심을 북돋아줘야 할지 내심 염려하고 있다. 책과 씨름하며 지쳐 있는 청소년들에게 잠시나마 휴식과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청소년 여름 신앙캠프를 허락해 달라는 청소년분과장과 교리교사들, 이들을 측면 지원하는 보좌신부님과 수녀님의 요청에 그야말로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로마 유학 시절에 만나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친분을 맺고 형제애를 다지고 있는 동료 사제들이 있다. 소속된 교구와 수도회가 서로 다르지만 한 해 2박3일 일정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맡고 있는 사목과 신앙생활에 관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정신의 휴식을 위하여 또 몸과 마음의 힘찬 건강을 위하여 즐겁게 함께 모여 영적 지적 생활에서 상호 부조를 모색하고, 사목 수행에서 더 잘 협력하고, 그리고 자칫 일어날 수 있는 고독의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료 사제 모임이 어언 24년째다.

올해에는 전주에서 모여 천주교의 첫 순교자 세 분(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인 복자 윤치헌 프란치스코)의 유해가 발굴된 초남이성지를 방문하여 기도하고, 전동성당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을 둘러보았다. 참으로 몸과 마음의 휴식은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물(1베드 2,5 참조)이 될 수 있다. 짧은 휴식과 유익한 만남을 통해 각자 맡은 곳에서 신자들의 영적 선익을 위해 노력하는 다른 동료 사제들의 모습을 보며 용기와 위로를 받고 기쁨과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하나의 목적을 함께 추구하고 있는 사제들은 각기 자기 동료들과 함께 온갖 협력과 기도와 사랑의 끈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들은 교구 사제이든 수도 사제이든 서로 도와 언제나 진리의 협력자가 되려고 해야 한다”(사제 생활 8항 참조)는 교회의 가르침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본당으로 돌아왔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