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 스터디 데이즈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8-23 수정일 2022-08-24 발행일 2022-08-28 제 3308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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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불신의 위기… ‘진정한 관계’ 재건으로 해법 모색하다
디지털 시대의 고립된 개인
연결돼 있으면서 단절 발생
친교와 공동체성이 해결책

총회 둘째 날, 대표 행사인 ‘스터디 데이즈’에서 참가자들이 ‘가짜 뉴스와 신뢰의 위기’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 조직위원회 제공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이하 총회)가 2001년 시그니스 출범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개최됐다. 총회에서는 ‘디지털 세상의 평화’라는 대명제 아래 열띤 토론과 친교의 장이 열렸다.

대표 행사는 8월 16~18일 오전에 3일간 연이어 진행된 ‘스터디 데이즈’였다. 전 세계 저명한 언론인과 학자, 교수, 성직자들이 각 주제에 맞는 의견을 모으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다.

첫째 날부터 각각 ‘초연결시대에 고립된 개인’, ‘가짜뉴스와 신뢰의 위기’, ‘우리 삶의 터전, 지구 지키기’를 주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현대 세계의 문제를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심도있게 다뤘다. 복잡하게 엮여 초고속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 어떻게 평화를 모색할 수 있을까.

■ 초연결시대에 고립된 개인

디지털로 초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고립된 개인이라는 모순적 과제가 던져졌다.

태국 말씀의 선교수도회 소속 안토니 레덕 신부는 발제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상당 부분이 친구가 없다는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다”며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레덕 신부는 진심으로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이모티콘이나 다른 여러 방법을 사용하면서 피상적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며 사회적 단절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캐나다의 파올로 그라나타 박사는 “현대인들에게 잠금을 풀어 스마트폰을 건네는 것은 삶 전체가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팍스 크리스티 인터내셔널 공동대표 테레시아 와무유 와키라 수녀는 이런 현상을 ‘정신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했다. 와키라 수녀는 “초연결성은 현대사회의 가장 특징”이라며 “여기에는 연결돼 있으면서도 단절이 발생하는 모순이 있다”고 역설했다. 이로 인해 소외감과 외로움이 발생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그 원인으로 온라인에서의 관계가 실제 세계의 관계를 대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발제자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친교’와 ‘함께함’을 꼽았다.

교황청 홍보부 신학사목국장 나타샤 고베카 박사는 초연결시대 속 진정한 연결을 인간성 회복과 친교에서 찾았다.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지식이라기보다 인간으로서 존재함에 대한 지식과 이해, 그리고 하느님, 이웃과의 관계”라고 밝혔다. 특히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전통 깊은 곳에서 찾으려고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전례 안에서 발견되는 친교와 공동체성으로 초연결시대의 고립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황청 홍보국 파올로 루피니 장관은 앞선 기조연설에서 “진정한 관계는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연계”라며 “이것만이 고독과 외로움을 해소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도덕성이 있는 기술성이 필요하고, 만남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통한 친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가짜뉴스와 신뢰의 위기

가짜뉴스로 인한 분열은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전쟁과 독재로 얼룩진 러시아와 미얀마의 상황은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기조연설을 통해 “러시아에서 저널리즘은 사실상 파괴됐다”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은 전쟁 발발 이후 대부분의 출처가 차단돼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정보를 검증하는 일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다.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법안이 만들어졌고, 언론은 전쟁을 위한 선전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무라토프는 “인간은 그저 자신이 더 편안한 쪽으로 믿을 뿐”이라며 “사람들이 선전을 믿는 주된 이유도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 자유의 침해는 곧 독재로 이어지고, 독재는 결국 전쟁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미얀마의 한 수녀는 음성 발표를 통해 미얀마의 언론 상황을 전했다. 미얀마는 지난해 군사독재정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공식 언론을 통해 허위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이들은 인권 운동가 등 시위자들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다. 수녀는 “이와 같은 허위정보들은 사실 확인 없이 SNS를 통해서 퍼지고 있고, 특히 디지털 문해력이 떨어지는 젊은이가 가장 큰 희생자”라며 “가짜뉴스에 세뇌되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어진 발제에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원장 김민수(이냐시오) 신부는 한국 언론의 신뢰도 역시 5년 연속 최하위에 속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해가 갈수록 언론의 신뢰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불신으로 만연돼 있다는 증거”라며 팩트체크 시스템 구축과 미디어 교육 확대 등 다양한 대안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자본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곧 신뢰 규범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 안에서는 이타적인 활동으로 가장 신뢰가 높은 종교인 가톨릭교회가 사회적 신뢰의 저장소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칠레의 제이미 카릴 박사는 “관계를 재건하는 것은 가짜뉴스를 퇴치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인간성이 내포한 기술 활용, 즉 관계형 기술 윤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 우리 삶의 터전, 지구 지키기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적 요소이자 생존 조건이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미국의 신시아 모에로베다 교수는 향후 5~7년이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시기이며, 상상할 수 없는 기후재앙이 올 것을 경고했다. 그는 “환경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 요소라고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이 기후위기 앞에서도 인종과 계급의 불평등이 존재함을 지적했다. 그는 “기후위기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은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은 가장 빈곤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신시아 교수는 함께 정화시켜 갈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고 희망했다. 개인과 가정, 사회 체계 안에서의 노력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생태적 회심’을 통한 영성적 세계관 확립을 꼽으며 이를 전파하는 것이 언론인들의 소명이라고 당부했다.

전 UN 사무총장 기후변화 수석자문관 정래권 박사는 “이제는 우리 모두 움직여야 할 때”라며 세계적인 탄소 절감에 맞춰 탄소세는 늘여가고 소비세는 줄여나가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재생의 문화’에 대해서도 나눴다. 멕시코의 시각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인 키케 델가도는 “재생은 느리고 연약하고 불편하지만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키워드”라고 강조했다.

오디오 플랫폼 ‘팟빵’ 최준경 콘텐츠 제작 피디는 ‘플로깅’(plogging) 활동을 소개하며 실천적인 움직임을 제안했다. 플로깅은 조깅 또는 산책을 하며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환경운동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동참해 SNS에 인증하며 인기 있는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최 피디는 “디지털 기술로 인해 환경 운동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고, 회사 공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했다”며 미디어가 환경 운동을 가속화 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총회 셋째 날 열린 스터디 데이즈가 ‘우리 삶의 터전, 지구 지키기’를 주제로 서강대 정하상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 조직위원회 제공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