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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수상한 지구력 / 정연진 베드로 신부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
입력일 2022-08-30 수정일 2022-08-30 발행일 2022-09-04 제 330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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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를 허약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행동이 매우 느리며 팔과 다리는 가늘고 배는 볼록 튀어나와 있는데다가 잔병을 달고 살기 때문에, 그런 편견이 나에게도 오히려 자연스럽다. 목부터 발목까지 내려오는 수단을 입어, 내 가녀린(?) 몸을 가려본다고 하여도 허약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발견해도 허리를 굽히기 전 신중히 생각하고 자세를 취한 뒤에 주워야 하는 허리디스크 환자이며, 봄에는 햇빛 알레르기로 얼굴이 울긋불긋해지고 환절기에는 비염 알레르기로 훌쩍이기에 변명의 여지도 없다.

이런 내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끝까지 의심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건 내가 바로 체육특기생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내가 체육특기자로 졸업했다는 사실을 말하면 ‘대체 이게 뭔 소리야?’라는 표정과 함께 3초 가량 정적이 흐른다. 이내 최불암 할아버지처럼 ‘파 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는 분도 계시는데, “저도 웃기긴 하지만 진짜라고요!”하고 같이 ‘하하하!’ 웃게 된다.

내가 체육특기자로 졸업할 수 있었던 건 육상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운동신경은 부족하지만, 운동 자체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선생님께서 나를 눈여겨보셨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운동신경이 필요한 축구나 농구에서는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지구력을 요구하는 줄넘기나 육상에서는 두각을 나타냈다. 그마저도 뛰어난 실력이라고 평가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선생님 보시기엔 훈련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학교 대표로 선발돼 수원시 육상대회도 참여해보고 팀원들의 우수한 성적 덕에 덩달아 경기도 대회까지 나가보았다. 내게는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의 지구력이 평균 이상이었던 것은 황당하게도 내가 나를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몸에서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도 멈추지 못하고 얼마간 더 쥐어짜내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전교생이 동시에 참여하는 줄넘기 대회였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일제히 줄넘기를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에게 상을 수여하는 것이다. 그해 나는 최우수상을 받았는데, 눈이 뒤집혀 땅이 움직이는 것 같고 시야가 흐릿해져 정신을 잃어가는 듯하였으나 멈춰지지 않아 전교생 중 최후의 생존자가 되어버렸다.

고백하건대 내 사제의 삶을 지탱하는 건 나의 이런 수상한 지구력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신학생 시절을 포함하여 9년 차 사제가 되기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정말 많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에 절망도 많이 했다. 그런데도 내가 사제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성령의 이끄심에 더하여 나의 모자란 제어 능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만일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교우들에게 짐이 되거나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나의 수상한 지구력이 계속 작동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