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성체 상륙 작전 / 정연진 베드로 신부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
입력일 2022-09-05 수정일 2022-09-06 발행일 2022-09-11 제 331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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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신자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성체를 모시고 나가 직접 영해드리는데 이를 봉성체라고 한다. 대부분의 본당이 그러하듯 내가 부임한 본당 관할구역 내에 요양병원 하나가 있었다. 부임 후 처음 봉성체를 떠난 날, 기쁜 마음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예사롭지 않은 한 사람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 나는 직감했다. ‘아! 나에게 고난이 찾아오겠구나’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병원에는 5~6명 환자들이 한 방에서 생활한다. 그 안에는 천주교 신자만이 아니라 타종교 신자와 종교가 없는 분들이 섞여있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다른 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성가도 없이 약식으로 예식을 진행한다.

예식을 시작하며 성호경을 긋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아니 믿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뭐한다고 이 난리야?” 나는 그분께 다가가 양해를 구해보았다. 하지만 냉랭한 태도와 함께 심한 말들이 쏟아졌다. 자리로 돌아가 진땀을 빼며 성체를 영해드리고 도망치듯 방에서 나왔다.

한 달이 지난 뒤 그 병실에 들어가니 그분은 우릴 향해 작심한 듯 욕설을 쏟아냈다. 봉사자들이 손을 잡으며 달래려 하면 더 큰 소리로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었다. 병실 가득 울려 퍼지는 욕설을 애써 외면하고 서둘러 봉성체를 마치고 나왔다. 그저 견뎌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1년 넘게 꾸준히 방문했다.

그러나 그분의 욕설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수위가 높아졌다. 결국 환자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고, 간호사들도 그 환자분을 나무랐지만 그럴수록 욕설은 더 심해졌다.

“아휴 신부님, 그냥 오지 마셔요. 이런 소리 들으면서 어떻게 매달 오세요. 난 괜찮으니 오지 마요.”

그 소리에 잠시 흔들렸다. 그 병실은 봉성체를 포기하고 건너뛸까? 하지만 그 방에는 신자가 세 분이나 계시고, 내가 욕먹기 싫다고 건너뛴다는 건 심각한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봉성체날 만큼은 나에게 박해시대였다.

결국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병원 관계자에게 부탁하여 교우 세 분의 침대만 몰래 빼내서 다목적실로 들어가 성체를 영하는 것이다. 꽤 좋은 방법이었으나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작전을 바꿔 봉사자들은 복도에 대기하고 나 혼자 병실에 몰래 잠입(?)하여 귓속말로 속삭이며 한 분씩 봉성체를 거행했다. 그러나 내 시커먼 복장 때문에 금세 들켜 욕을 백 사발 정도 얻어먹었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봉성체를 힘겹게 이어가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극심해져 병원 출입이 금지되었고, 봉성체는 중단됐다.

우리 모두는 다양한 박해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간다. 가족의 만류, 생업으로 인한 여러 제약 등. 이런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신앙을 지켜내야 한다. 사실 포기하는 것도, 지속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하지만 신앙이 내 삶에 소중한 것이라면 언제나 방법은 있다.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성령께서는 헤쳐 갈 길을 보여주신다. 오늘도 힘겹게 신앙을 이어가는 모든 분들께 화살기도를 올린다.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