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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빼앗기지 않는 희망/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09-05 수정일 2022-09-06 발행일 2022-09-11 제 331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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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당시 경성고등보통학교 2학년이었던 심훈(1901~1936)은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벌어진 만세 시위에 참가했다가 체포됐다. 심훈이 1935년에 발표한 소설 ‘상록수’는 1930년대 한국 농민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다음은 1919년 6월에 이뤄진 심훈의 경성지방법원 예심신문 조서에 기록된 문답이다.

문: 독립운동이란 무엇인가?

답: 우리가 지금은 일본에 합병당했지만, 일본에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 조선만의 정치를 하기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하지요.

문: 피고가 독립을 희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한 민족은 다른 민족으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고 독립된 정치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조선에서 하는 무단정치는 문관까지 칼을 차고 조선인을 적대시하는 것이오. 또 교육을 비롯해 여러 가지 불평등한 지배로 마침내 조선인을 일본의 노예로 만들려 하기에 우리는 독립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문: 이같이 독립선언을 하고 만세를 부르며 다니면 독립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가?

답: 물론 만세를 부르는 것만으로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독립사상을 고취시켜 놓으면 언젠가는 독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지요.

문 : 장래에도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 기회만 있으면 또 할 것이오.

100여 년 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적으로 만세를 외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믿는 이들에게는 일본 제국이 너무 강했고, ‘독립 만세’는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정의와 평화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은 세상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외쳤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으로부터 초대를 받는 대로 북한에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여러 차례 방북 의지를 밝힌 교황님이지만 이번에는 북한 당국에 “나를 초대해 달라는 것이다”라며 더 직접적인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대결로 치닫는 국제정세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보면 방북을 위한 교황님과 교황청의 노력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빼앗기지 않는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소원하는 한국교회가 교황님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