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18)가톨릭목포성지와 역사박물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09-20 수정일 2022-09-20 발행일 2022-09-25 제 331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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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길 알려주는 언덕 위 신앙 ‘등대’를 만나다

우리나라 첫 ‘준대성전’으로 지정
신자·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국내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 도입된 곳
역사박물관에 관련 자료 전시 중

바위 언덕에 우뚝 솟은 산정동 순교자 기념성당 전경.

아름다운 목포는 항구 도시로 나지막한 유달산이 있어서 언제 보아도 정겹다. 시내의 언덕에 조금만 올라가도 목포항이 보이고 바닷가에 터를 잡은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찾은 목포가 낯설게 보이지 않는 것은 수려한 자연이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서정성이 가득 담긴 목포의 산정동 산마루에 광주대교구의 태동지인 가톨릭목포성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전남 지역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다른 지역에서 온 신자들이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다.

1896년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가 목포본당(현 산정동본당) 신설을 결정하고 이듬해에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 전교회 조유도 신부(데예, Albert Deshayes, 1817~1910)가 부임함으로써 최초의 본당이 탄생했다. 이곳 산정동성당을 통해서 광주와 전남 지역에 복음이 전해져 오늘에 이른다.

2020년에 광주대교구는 언덕위에 자리 잡은 산정동성당과 인근 지역을 신자들과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성지로 만들었다. 가톨릭목포성지에는 이 지역 순교자와 레지오마리애(Legio Mariae, 마리아의 군대)를 기리는 산정동 순교자 기념성당, 성지역사박물관,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이 있다.

이곳 성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산정동 순교자 기념성당(주보: 성 십자가 현양)이다. 교황청은 2021년 5월, 바위 언덕에 우뚝 솟은 이 성당을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준대성전(Minor Basilica)으로 지정하였다. 준대성전은 역사적, 예술적, 신앙적인 면에서 중요성이 인정되는 성당에 붙여진 칭호로서 교황에 의해 특전이 부여된다.

이 대성당의 두 종탑은 전망대의 역할을 하면서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어주는 등대처럼 보인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벽에는 전남 지역과 교회가 겪었던 아픔을 담은 부조 작품이 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의 희생자를 기리는 부조는 교회가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품어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6·25전쟁 때는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과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거나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그 가운데서 광주지목구장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Patrick Brennan, 안 파트리치오, 1901~1950, 미국), 산정동본당 주임 토머스 쿠삭 신부(Thomas Cusack, 고 토마스, 1910~1950, 아일랜드), 산정동본당 보좌였던 존 오브라이언 신부(John Patric O‘Brien, 오 요한, 1918~1950, 아일랜드)는 이곳에서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북송 중에 대전에서 피살되었다.

세 사제와 전주에서 피살된 전기수 그레고리오, 고광규 베드로 신학생은 하느님의 종 홍용호 주교(프란치스코 보르지아, 1906~1950?)와 동료 80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을 위한 청원 명단에 들어갔다.

대성당 내부의 제단 양 옆에는 프랑스 알랑송 출신의 성녀 소화 데레사(1837~1897)와 그의 부모인 성 루이 마르탱·성녀 마리 젤리 게랭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다. 또한 제대 안에는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 오르실 때 졌던 십자가의 작은 조각, 보목(寶木)을 넣어서 대성당의 분위기를 더욱 경건하게 만든다. 산정동 순교자 기념성당의 주보가 성 십자가 현양이라서 십자가 보목은 더욱 의미가 크다.

대성당 앞의 넓은 성모광장에서 야외 제단과 성모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광장 옆의 원형 메모리얼 타워 위에는 목포 시내를 바라보며 양팔을 펼쳐 축복해 주시는 예수성심상이 있다. 타워 내부의 원형 길 벽에 있는 성경 부조를 보며 내려가면 가톨릭목포성지 역사박물관에 다다른다.

역사박물관 외부.

역사박물관은 1937년에 건립된 3층 적벽돌 건물로, 원래는 광주대교구 최초의 교구청 건물이었다. 교구청이 1956년 광주로 이전한 후 성 골롬반 외방 선교 수녀회, 성 골롬반 병원 등에서 사용하였다. 옛 교구청을 원형으로 복원 보수하여 2017년부터 역사박물관(등록 문화재 제513호)으로 개관하였다.

이 건물의 지하층은 기도와 묵상공간으로 꾸며졌다. 이탈리아 로마 외곽에 있는 지하 묘지인 카타콤바 일부를 재현하였다. 박해 시대에 초대 교회 신자들이 카타콤바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안장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간청하며 그린 성화들을 보며 기도할 수 있다.

1층은 광주대교구의 역사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유물 전시장과 6·25전쟁 때 신앙의 증인들을 알려주는 순교자실 등이 있다. 또한 역대 교구장과 주교가 나란히 앉아있는 그림과 교구에서 사목하는 모든 사제의 사진도 볼 수 있다.

2층에는 레지오마리애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 중이다. 레지오마리애는 1953년 광주교구장 서리 하롤드 헨리 신부(Harold Henry, 1909~1976, 미국)와 산정동본당 주임 안 토마스 모란 신부(Thomas Moran, 1920~1976, 아일랜드)에 의해 우리나라에 최초로 도입되었다. 레지오마리애의 역사, 창시자 프랭크 더프(Frank Duff, 1889~1980, 아일랜드)의 성경, 성모님의 일생을 그린 이콘, 세계 각국의 성모상, 묵주와 십자가를 전시 중이다.

3층은 초기 교구청으로 사용했을 때 모습을 잘 보존하여 보여준다. 사제들이 사용했던 작은 경당과 침실 등 생활공간은 좁고 소박하다. 이곳에서 지냈던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들과 모든 사제들이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매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가톨릭목포성지 곳곳에는 순교자 현양 십자가와 교회의 여러 기관이 있어서 천천히 순례하며 기도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한국레지오마리애기념관에서는 레지오 단원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숙식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의 신심을 본받으며 신앙을 키울 수 있다.

새롭게 조성된 신앙과 기도의 공간인 가톨릭목포성지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며 키울 수 있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뗀다.

산정동 기념성당 종탑에서 내려다본 모습. 예수성심상·역사박물관과 함께 목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