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복음 나누기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2-10-04 수정일 2022-10-05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가족 셋이 잇달아 암 판정을 받았어요. 거센 파도를 마주하듯 참담했습니다. 그때 제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원망과 탄식뿐이었죠. 언니는 병상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다가 잠이 들었는데 밝고 평온한 얼굴빛으로 선종했어요. 동생은 완치 판정을 받아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요. 이제 저는 하느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마징가 제트’가 큰 인기였어요. 교리를 빼먹고 친구 집에서 TV를 보곤 했는데 그 바람에 첫 영성체가 한 해 늦어졌어요. 그때 안타까워하셨던 어머니는 이른 새벽에 묵주기도를 바쳤고 나는 그 모습에 안도하며 다시 잠을 잤죠.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아내가 이른 아침에 기도하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걱정이 돼요. 그래서 같이 기도하게 됐습니다.”

필자가 수학 중인 가톨릭교리신학원 공동체 미사에서 접한 ‘복음 나누기’ 가운데 일부이다. 미사에서는 특이한 순서가 있다. 신부님의 복음 봉독이 끝나면 학생이 독서대에 오른다. 사제의 강론을 대신하는 그는 그날의 복음에 비추어 자신의 믿음 체험을 이야기한다.

지난 3월 신학원에 입학한 후 첫 미사 때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말씀 전례에서 사제의 강론은 빼놓을 수 없는 터라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연중 딱 한 번 평신도 주일 때 사목회장 등 평신도의 강론이 있긴 하지만…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평신도 주일을 지킨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할 평신도의 신원을 강조하는 뜻일 것이다. 아무튼 2학년 선배들은 복음 나누기를 차분하면서도 논리 정연하게 펼치는 게 아닌가. 오십여 명의 학우들 앞에서 어색하고 떨릴 법도 한데… 이것도 예비 선교사, 예비 교리교사로서 담금질하는 훈련이 아닐까 싶다.

복음 나누기에 대해 생각해 보려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 먼저 떠오른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있든 바로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그분과 만나려는 마음, 날마다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도록 권고합니다.”(「복음의 기쁨」 3항)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에는 형제들은 구역모임에서, 자매들은 반모임에서 복음 나누기를 했다. 소공동체 모임에서 성경을 읽고 마음에 와닿는 단어나 구절을 기도하듯 소리 내서 세 번씩 읽곤 했다. 몇 명이 같은 방식으로 하고 나서 각자 단상이나 경험담을 나눴다. 이러한 기도 모임이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비대면과 거리두기 탓에 신앙생활은 예전만 못하다. 2년여의 불안과 불편 끝에 엔데믹으로 옮겨가며 야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풀렸다. 상황 변화 속에 실내에서도 ‘노 마스크’는 시간문제이다. 뉴노멀에 길들여져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터. 그러나 신앙생활의 바탕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공동체 정신임을 새기자.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과 친교를 이루어 자신의 소명을 수행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030항)

신학원에서 복음 나누기를 스무 번 가까이 경험했다. 발표자의 생생한 체험담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속으로 따스함이 번지기도 한다. 그런데 예수님 체험의 계기가 어찌 고통과 시련뿐이겠는가. 2학년이 되는 내년이면 나의 차례도 온다. 그럼 나는 독서대에 올라 어떤 예화의 보따리를 풀게 될까. 일상의 소소한 감사와 기쁨, 자연과 사계절의 변화에도 행복할 수 있기를, 하느님 사랑을 담대히 증언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고계연 베드로 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