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잃어버린 우리의 시간들! / 김장희

김장희 베드로,제2대리구 아미동본당
입력일 2022-10-05 수정일 2022-10-05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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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옛 이야기를 꺼내 본다. 유아세례를 통해 주님과 맺은 인연이지만, 의식을 갖고 성당에 다닌 기억은 아마도 첫영성체 즈음이라고 생각한다. 성당에 가는 것보다 봉헌금으로 동네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거나 흙먼지 날리는 공터에서 정신없이 공차기하던 시간이 좋았다.

내 마음과 똑같았을 누이의 고자질로 멀리서 어머니의 갈라진 음성이 들려오면, 밤송이머리에서 눈이 따갑도록 연신 흐르는 땟국물을 닦으며 서둘러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 가는 길 걷어찬 돌부리에 상한 운동화 덕분에 어머니께 혼났어도 장발 머리 예수님 앞에서 목청껏 불렀던 성가 소리가 아련하다. 약속하지 않았어도 정해진 시간이면 성당에 모여 제 할 일을 하고, 마른 빵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나누던 하얀 미소가 정겨웠던 청년 시절도 생각난다.

그 시절 내 편은 오로지 신부님과 수녀님이셨다. 커서 신부님 되라는 당부에는 응답하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 그분들과의 인연을 반복하며 살아왔고 신앙 안에서 성장하며 희생과 봉사, 나눔, 배려, 하물며 지식과 재능까지도 그분들께 배움으로써 지금까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여러 책임을 맡고 기꺼이 봉사도 하며 그 일원으로 살아간다. 오랜 기간 여러 봉사직을 수행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간과 부족한 소질의 봉헌이 전부였던 것 같다. 신종 질병으로 인하여 신앙생활조차도 편리성과 게으름에 지배당하고 있고, 주일을 궐해도 자신을 사하는 우를 범하면서도 그저 예수님을 편한 수호천사 정도로만 곁에 모시는 신앙인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요즘 현실이다.

신부님들께서는 오늘도 초심의 희망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사목 대상인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함께하지 않는다면, 주님 사업은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비록 내 생각과 경험이 신부님과 일치하지 않았어도, 또 과한 책임감에서 내 의지를 꺾지 못해 후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마음으로 수없이 많은 용서와 화해를 청한 형제·자매를 볼 용기가 없더라도 이젠 주님께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아직도 대면 소통이 부자연스러운 현실이지만, 미루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잃었던 시간을 어떻게 되돌리고 공동체 안에서의 내 자리를 언제까지 비워둘 것인가! 여느 때 같았으면 순교자현양대회, 단체별 성지순례, 가을운동회 등 여러 행사로 분주했을 시간이다. 이젠 조심스럽게 작은 모임들이 시작되고 있다. 능동적 참여를 통해 소통과 친교를 나누고, 그 속에서 주님의 자녀됨을 재삼 느껴보자.

그동안 누렸던 시간과 생활 속 자유도 이젠 주님 앞에 용서와 화해의 이름으로 돌려 드리고 주님께서 기꺼이 지고 가셨던 십자가 그 길을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함께 걸어가자.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루카 13,33 참조)

김장희 베드로,제2대리구 아미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