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본당 공간 사목에 주목하자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서울 상봉동본당 주임)
입력일 2022-10-11 수정일 2022-10-11 발행일 2022-10-16 제 331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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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당에서 혼인미사를 주례한 적이 있다. 그때 기억에 오래 남은 것은 그 성당 제단의 높이다. 신자석에서 보면 꽤 높아서 제대와 사제를 우러러볼 정도다. 게다가 신자들은 높은 제단과 사제에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선이 그어진 것만 같다. 보이지 않는 제단 장궤틀이 놓인 듯이 성속이원론이 아직도 작동되는가 싶다. 물론 성스러움과 속된 것의 구분은 필요하겠지만 지나친 분리로 성스러움이 일상화되지 못할 우려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제단과 신자석으로 구성된 성당은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 거처하는 장소이며, 가톨릭신자들이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장소이다. 성당은 거룩한 장소이지만 최근에는 성당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성당에서 음악회, 콘서트, 주일학교 성탄제 등 공연과 행사가 이루어진다. 옛날에는 미사 이외에는 제단에서 어떤 행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허용되어 1980년대에는 제단에서 행사를 할 때엔 감실을 천으로 가리거나 성체를 다른 곳에 모셨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성체가 모셔진 채 제단에서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이 이루어질 정도로 변화되었다고 보겠다. 유럽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성당들은 대부분 음악회나 콘서트와 같은 이벤트를 개최하여 이미 성당의 일상화가 이루어져 있다.

도시 속에 많은 공간을 가지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성당이다. 성당에는 여러 종류의 공간이 있다. 소성당 혹은 강당, 교실, 휴게실이나 카페, 성체조배실, 우리농매장 등 목적과 대상에 따라 다양하다. 대체로 사목협의회 회의, 레지오마리애 주회, 구역반모임, 단체 모임 등이 미사 전후에 이루어진다. 주일은 예외지만 주중에는 미사가 있는 오전이나 저녁 시간 이외에 오후 시간에는 성당의 모든 공간이 텅 비어 있는 상태다. 반면에 지역사회는 주중에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주중에 남아도는 본당 공간을 지역사회에 개방하면 어떨까? 얼마 전에 서울시 심리지원센터와 연계된 도예 공방에서 ‘세라믹 테라피’ 프로그램을 실시하고자 우리 성당 교실 사용을 신청한 일이 있어 흔쾌히 허락한 적이 있다. 이런 방식대로 지역사회에 좋은 문화 프로그램들을 유치하거나 청소년 공부방으로 일정 시간 허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본당이 자신이 갖추고 있는 성당 등의 공간을 통해 지역사회와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호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성당마다 휴게실이라는 만남의 공간이 있어왔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다 카페로 전환되어 신자들이 친교와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많이 이용한다. 우리나라는 한 집 걸러 카페가 있을 정도로 카페 천국이다. 요즘의 카페는 진화하고 있다. 카페에서 전시회, 작은 음악회, 시낭송, 공연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래도 가장 각광을 받는 카페는 ‘북카페’다. 책장이 카페의 배경으로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관심이 있는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으며, 구매할 수도 있다. 성당에도 카페가 있다면 단순히 커피나 차를 마시고 대화하는 장소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북카페로 꾸민다면 신자들은 차를 마시면서 일반서적이나 영성서적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한쪽 귀퉁이에 조그마한 책상과 의자를 놓아 성경 이어쓰기 코너를 만들어놓아도 좋겠다. 누구든지 지나가다가 성경 한 구절이라도 쓴다면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거기에다 작은 음악회나 시낭송, 또는 출판기념회, 성화나 성물 전시회를 실시한다면, 더 나아가 전시된 성화나 성물 판매를 통해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면 성당 북카페를 최대 활용하는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이처럼 본당 공간 사목이 실천되려면 아무래도 사목자의 열성과 창의성, 그리고 의지가 뒷받침이 되기를 바라본다.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서울 상봉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