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끊임없는 복음화의 여정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10-18 수정일 2022-10-18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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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는 덜하지만, 거리를 걷다 보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말로 소리 높여 외치며 전도하는 이들이나 확성기로 방송하는 개신교 전도 차량과 종종 마주칩니다. 얼마 전에도 그렇게 전도하는 차량이 거리를 지나가는데, 제 앞에서 걸어가던 청년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아유, 지겨워. 맨날 협박이야. 천국은 됐으니 혐오나 하지 말라고 해. 교회만 없어도 천국이겠네. 저녁 시간에도 저렇게 시끄럽게 확성기 트는 건 불법이지 않나? 신고할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선교 활동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열성적으로 실천하려는 개신교회에서는 예수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단순하고 강렬한 구호로 외치며 거리에서 전도했고, 실제로 이런 활동으로 개신교회가 급성장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방식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소음공해나 불쾌한 협박으로까지 여겨지는 모습입니다.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전도 방식이 요즘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않는 것은 분명한데 천주교회의 선교 방식은 이들과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 그 청년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조용히 곱씹어 보았습니다.

라틴어로 ‘파견하다(missio)’라는 말에서 나온 ‘선교’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저 믿지 않는 이들을 성당으로 불러 모아 세례를 받게 하여 신자 수를 늘리는 게 선교의 목적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파견되어 봉사하는 것이 선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선교에 대한 이런 새로운 이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만민에게 파견된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교회”로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고 새롭게 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의 선교적 본질과 사명을 재조명했습니다.(선교교령 「만민에게」 1-2항 참조)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목적이 “20세기 인류에게 복음 선포를 하는 데 적응할 수 있는 20세기의 교회가 되도록 하자”(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 2항)는 것이었다며,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여 “전 세계를 참으로 복음화하려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교회 자체가 복음화”(15항)되어야 한다고 ‘선교’의 의미를 ‘복음화’로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개막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2년 10월 20일에 발표된 개막 메시지에서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욱더 충실해지도록 자신을 쇄신하고, 현대인들이 하느님의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 교회는 얼마나 충실히 쇄신되고 현대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함께 나누며 세상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고 있을까요?

최근 한국 사회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에 대해 회의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집니다. 복음의 진리는 변함없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워져야 하는데, 우리 자신도 복음의 기쁨을 제대로 살지 못할뿐더러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선포 방식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복음 말씀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기쁜 소식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살고 세상 안에서 증거하는 끊임없는 복음화의 여정이 우리 시대 교회와 신앙인들의 소명이라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전교주일을 맞아 되새겨 봅니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