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그리운 성지 관광? / 안봉환 신부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
입력일 2022-10-25 수정일 2022-10-25 발행일 2022-10-30 제 331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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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다양한 형태의 위기가 늘 인류에게 있었고 인류는 이를 잘 극복해왔다. 날로 진보하는 첨단 과학 기술과 더욱 긴밀해지는 인간관계 등 현대는 더욱더 활발하고 광범위한 신자들의 열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코로나19 상황에서 단절되고 폐쇄된 채 잠시 신앙생활을 쉬고 있는 신자들이 교회 안에서 자발적이고 효과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지 힘들다.

몇 달 전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를 해제한다는 소식을 발표하자 일상회복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눈에 띄지 않던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목적도 OO현장체험, OO산행, OO방문, 성지순례 등 다양하다. 어느 날 본당 내 50~60대 남성 단체에서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부부동반 성지순례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안했다. 언젠가는 코로나19 상황도 잘 해결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안고 신자들과 더불어 교구나 본당 또는 집 ‘안’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밖’에 있는 성지를 방문하거나 순례할 마음을 품고 있던 터였다. 모든 것을 주님의 뜻과 은총에 맡기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성지순례를 기쁜 마음으로 준비토록 했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 16,9)

모든 인간은 하늘을 향해 지상을 헤매는 순례자이며 나그네이다. 최희준씨의 노래 ‘하숙생’의 가사가 문득 생각난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하늘로 향하는 지상 순례는 개인, 곧 ‘홀로’의 여정일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공동체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인생의 순례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결코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두세 달 전부터 준비해온 성지순례일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 순례를 신청한 부부들이 성당 마당에 모여 인원을 점검하고 간단한 기도와 함께 준비된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지순례를 생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저마다 마스크 너머로 상기되고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 일정의 순례와 안전 운행을 바라며 묵주기도를 다함께 바치자 곧 방문할 성지에 대한 설명이 뒤따랐다. 박해를 통해 신앙을 증언한 선조들을 생각하며 세 시간 가량 개인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남 거제 순교복자 윤봉문 요셉(1852~1888)의 유해가 모셔진 성지! 다른 교구에서 순례 온 신자들도 있었다. 성지 담당사제의 미사 거행과 순교복자에 대한 해설을 통해 신앙의 선조들이 증언하셨던 그 신앙의 본모습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그룹마다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기도를 통하여 순교자가 드리는 기도와 결합되었으며 복자 유해가 모셔진 무덤에 이르러서는 순교자에게 저마다의 전구를 청하였다. “순례는 지상에서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상기시켜 준다. 전통적으로 순례는 기도를 쇄신하게 하는 매우 좋은 기회로 간주되어 왔다. 자신들의 살아 있는 샘을 찾는 순례자에게 성지는, 그들이 ‘교회로서’ 그리스도교 기도를 체험하는 특별한 곳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91항)

신자들이 홀로 걷거나 버스를 타고 성지 순례하며 성인을 공경하는 것은 신심을 북돋아주는데 여러모로 유익하다. 기도를 통하여 성인들과 결합되고 순례를 통해 형제애와 공동체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으며 코로나 상황처럼 힘들고 어려운 삶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기쁘고 유쾌하게 살아가기 위한 동기를 부여해주기 때문이다. 제단체로 하여금 가까운 성지라도 얼른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