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21)신다윈주의는 과연 완벽한 진화론인가?③

김도현 바오로 신부(전 서강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2-10-25 수정일 2022-10-25 발행일 2022-10-30 제 3316호 1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진화는 ‘유전자’나 ‘적응’에 의해 결정? 단정할 만한 결과는 없어
유전자 만능론에 빠질 위험 있고
열등 유전자 차별로 이어질 우려도
실제로 생명체의 많은 형질들은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란 반론도

저는 지난 글을 통해 대진화와 관련해서 진화론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속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1.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

2. 진화의 속도는 점진적인 것인가 아니면 급격한 것인가?

3. 진화 메커니즘과 생명 현상은 분자생물학의 대상인 유전자 수준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4. 생물의 형질은 자연선택과 얼마나 관련이 되어 있는가?

5. 개미나 벌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라는 현상은 진화의 결과인가?

6. 신다윈주의만이 성공한 진화 이론인가?

이제 세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은 소위 ‘유전자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에 입각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유전자 결정론은 진화 메커니즘, 더 나아가서 인간 행동까지도 개체나 집단이 아니라 유전자의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에 대한 유전자 중심적 관점을 대중화하고 밈(Meme)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1976년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로 널리 알려진 진화론자로서 현재까지 과학적 무신론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죠.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개체는 단지 유전자를 전달하는 운반체에 불과하게 됩니다.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유전자 결정론자인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은 개미 연구를 통해 동물의 사회적 행동과 진화의 연관성을 모색함으로써 사회적 동물들의 사회 현상을 생물학적 방식을 통해 설명하려 시도하는 소위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을 주창하였습니다. 사회생물학은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을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여기에는 인간의 행동도 포함됩니다. 여기서 윌슨의 생물학적 기초는 바로 유전자가 되겠습니다. 그는 사회적 동물들의 사회 현상을 유전자의 수준에서 고찰할 때 자연선택이 결정적으로 작동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어떻게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이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더 나아가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종교와 윤리 등)도 역시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 생물학과 진화론적 방법론을 통해 분석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적 생명관을 담은 영화 ‘가타카’(1997) 한 장면. 영화는 유전자가 모든 생명 현상에 우선한다는 주장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영상 갈무리

하지만 도킨스와 윌슨의 관점은 자칫 유전자만 이해하면 모든 생명 현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소위 유전자 만능론으로 빠질 가능성이 다분히 있으며, 특히 인간을 대상으로 고려하게 될 경우 이 관점은 인류 역사에서 큰 문제를 야기한 우생학(Eugenics)과 유사한 것으로 곡해될 우려가 다분히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당연히 유전자의 우월적 지위보다는 생물 개체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 등 다른 요인들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식으로 나아가게 되죠.

대표적으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동료인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 1929~)에 따르면, 유전자만 들여다보아서는 생명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유전자 차원, 유기체 차원, 환경과 이들의 상호작용이라는 차원을 깊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생명체의 본성이 제대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전자 결정론은 사라진 이론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유전자 결정론을 대체하는 관점이 주류를 이루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이제 네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네 번째 질문은 적응주의(adaptationism)와 관련된 것입니다. 진화론의 역사 안에는 ‘자연선택에 의한 생물의 적응(adaptation)이 형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관해 오랫동안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여기서 적응이란 생물이 생존에 유리하도록 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몇몇 학자들은 극단적으로 생물의 ‘모든’ 형질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이를 적응주의라 부르고 있죠.

이 적응주의에 따르면 한 생명체의 모든 형질은 그 생명체가 살고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에 적합하도록 자연선택된 결과인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진화론자들이 적응주의를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티븐 제이 굴드의 경우는 생명체의 많은 형질이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적응주의를 공격하기 위해서 동료인 리처드 르원틴과 함께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을 진화론에 끌어들여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 내부. 기둥 위에 아치를 세우고 그 위에 돔을 만들다 보면 아치와 돔 사이에 삼각형 모양의 휘어진 면(빨간 색 동그라미 표시 부분)이 나타나는데,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은 이처럼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스팬드럴 부분을 예로 들면서 생명체가 지닌 많은 형질들이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산 마르코 대성당처럼 돔형의 건축물을 지을 경우 기둥 위에 아치를 세우고 그 위에 돔을 만들다 보면 아치와 돔 사이에 홀쭉한 삼각형 모양의 휘어진 면이 생기게 되는데 이 부분은 필수적인 부분이 아니라 아치 위에 돔을 올리는 건축물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부산물’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이 면은 사실 펜던티브(pendentive)인데 굴드와 르원틴이 그들의 논문에서 ‘스팬드럴’(spandrel)이라고 잘못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성당을 건축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부산물로 생겨난 스팬드럴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그 공간에도 그림이나 조각을 장식했죠. 굴드와 르원틴에 따르면, 스팬드럴은 성당을 최상으로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고안된 공간이 아니며 그저 건축 과정으로부터 발생된 부산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체가 지니고 있는 많은 형질들은 스팬드럴이 그런 것처럼 그저 진화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 역시도 직접적인 자연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뇌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발생된 진화의 부산물인 것이죠.

그러면 적응주의는 굴드와 르원틴에 의해 완전히 정리된 이론일까요? 아직도 여전히 적응주의를 지지하는 진화론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두 견해 역시 긴 논쟁이 필요해 보입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전 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