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113)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회복하는 일/ 로버트 미켄스

입력일 2022-11-01 수정일 2022-11-01 발행일 2022-11-06 제 331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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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 개혁 의미 폄훼하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소수집단
교황, 시노달리타스 집중하며
공의회 정신의 단절 막고 있어

10여 년 전 교황청에서 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새 교황청 문헌을 공개하는 자리였는데, 당시 나는 기자로서 그 문헌에 담긴 내용 중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부분 여러 개를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자 바로 몇몇 젊은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우리가 충분히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아이고, 또 공의회 타령이네!”라고 말했다.

최근 그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려지는 일이 있었다. 1962년 10월 11일 개막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60주년을 맞아 몇몇 언론과 소셜 미디어에서 이 공의회에 관해 부정적인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전임교황 시절에는 극보수주의 비평가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폄훼하며 로마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유명세와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오늘날 이 공의회를 폄훼하는 행동은 흔치 않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 덕분이다.

전 워싱턴대교구장 도널드 우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4주년을 몇 주 앞둔 2017년 2월 예수회 잡지 「아메리카」에 “지금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다시 연결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사제품을 받은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그저 지나갔던 행사로 폄훼되던 시기 교황직을 물려받았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전례를 거의 제한 없이 거행하도록 하고 실질적으로 이를 증진 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른바 ‘전례 개혁의 개혁’을 단행했고, 이 개혁으로 자신도 모르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폄훼하는 경향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조치를 막아버렸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마친 교회가 공의회로 시작된 전례 개혁을 다시 거부하게 된다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다른 많은 부분들, 심지어 이 공의회 전체에 의문을 표시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얼 추기경이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어떻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져다준 에너지와 단절하게 된 걸까?

이러한 현상은 성 바오로 6세 재위 시기 전체에 걸쳐 그리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즉위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27년에 걸친 교황직 수행 동안 서서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단절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그가 뽑은 교황청 관리들은 필사적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의미하는 비전을 축소시키고 국한된 부분만 수행하는 데 그쳤다.

몇몇 사람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어리석었던 계절’로 치부하며 이를 끝내라고 목소리를 냈고, 이는 표류하는 사도좌라는 배를 안전하게 항구에 정박시키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이들은 쇄신과 개혁이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철권통치로 단속하려는 시도라고 한탄했다. 순응과 복종이 교황청의 운영 모델이 됐고 이를 따르지 않는 성직자와 신학자들은 견책을 받거나 쫓겨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일어났던 일과 공의회 후속 과정에서 진행된 주요 결정사항을 다시금 떠올리려는 사람들은 자비 없이 조롱받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지지자들이 반대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복원’ 프로젝트는 2005년 그가 선종할 당시 거의 모두 완성됐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치세에 교리적 토대를 쌓았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그의 뒤를 이어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됐다.

이후 새로운 해석학적 열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의미는 공식 문헌으로만 박제해 놓고 공의회 이전에 일어났던 일들로 ‘개혁의 연속성’이라고 포장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개혁의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석의 연속성’이라며 공의회 이전 과거로의 회복과 귀환을 정당화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치세 8년 동안 이 ‘개혁의 개혁’ 지지자들은 소수집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교황청 요직과 전 세계 주요 교구의 교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주객전도가 된 현상이었다.

이 꼬리는 아직 잘리지 않았다. 아직 많은 이들이 주교와 추기경으로 주요 직책을 맡고 있고 계속해서 교회 안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비전에 동의하지 않지만 대부분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때를 기다리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가 교회의 모든 단계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실행하려고 노력하는 데 집중하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신도를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에서 필수적인 구성요소로 정착시키는 것이 소수인 ‘개혁의 개혁’ 지지자들의 영향력에 대처하는 방안이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그리고 만일 이러한 일이 성사된다면 교회가 다시금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에너지로부터 단절되는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