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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한 알 겨자씨가 / 강명덕

강명덕(시몬·대구 두산본당)
입력일 2022-11-01 수정일 2022-11-02 발행일 2022-11-06 제 331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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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에서 열린 가족 축제’. 이날 우리는 20여 명의 대가족이 모여 아버지의 안식을 위해 연도를 드렸다.

“신부님, 저희 가족들과 같이 기념사진 한번 찍어 주시겠습니까?”

2022년 10월 15일, 두산성당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의 선친 강호성 요한의 4주기 연미사를 드리고 주임 신부님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평소 부정맥 때문에 응급실을 수차례 드나드시며 고생을 하시다가 2018년 10월 20일 아침, 의식을 잃으신지 반나절 만에 가족들도 알아보지 못하신 채 눈을 감으셨습니다. 생전에 정해 놓으신 대로 두산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린 뒤, 아버지를 고향의 가족묘에 모셨습니다.

1973년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세례를 받게 된 것이 우리 가족에게 한 알의 겨자씨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큰 형님이 신자였던 형수님과 결혼하면서 겨자씨가 뿌리를 내렸고, 저와 연애하면서 세례를 받은 파비올라가 셋째 며느리가 되면서 겨자씨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의 첫 아들 세례명 ‘비오’를 그대로 호적에 올리면서 13평 아파트의 현관문에 ‘황금성당 교우의 집’ 문패를 달았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큰 형님이 세례를 받았고, 또다시 10년 후에는 평생을 절에 다니시던 어머니께서도 큰 아들 따라 가겠다며 세례를 받으시고 그 이듬해에는 아버지께서도 세례를 받아 저희 집은 천주교 집안이 되었습니다. 겨자씨 한 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듯이 부모님과 그 증손자녀까지 온 집안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첫 기일 때의 일입니다. 전통 제례를 올릴 것인지 연미사로 드릴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큰 형님의 제안대로 제사도 지내고 연도도 바쳤습니다. 기제사에 연도를 더한 것은 지금까지 내려 온 집안 제사 문화의 큰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일에는 어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전통 방식의 제사를 드렸고, 지난 해 세 번째 기일에는 성령께서 어머니의 완고한 마음을 풀어주셔서 가족들은 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리고, 방역 수칙에 따라 아들과 며느리만 산소에 가서 연도를 드렸습니다. 작년 봄에 큰 형님은 온가족이 편안하게 연도를 드릴 수 있도록 가족묘 주위를 대폭 넓히고 단장을 하였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에서 많은 가족이 모이므로 산소 오르는 계단도 넓히고 잡목을 정리하고 소나무, 백일홍, 영산홍을 심으며 힘은 들었지만 즐겁게 경관을 다듬고 가꾸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아버지의 증손자녀까지 20여 명의 대가족이 모여 아버지의 편안한 안식을 위하여 연도를 드렸습니다. 이어진 친교의 시간에는 지난날 아버지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생각하며, 깜짝 등장한 며느리와 증손자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온가족이 ‘사랑해 당신을’, 앵콜곡으로 아버지의 애창곡 ‘오빠생각’을 합창하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들기도 하였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감동이 가슴속 깊이 울려옵니다.

하느님!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강명덕(시몬·대구 두산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