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하느님의 종 81위' 단상

천강우 프란치스코 명예기자
입력일 2022-11-04 수정일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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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 이민석 연구원이 10월 28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하느님의 종 81위’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가 주관하는 2022년 가을학기 공개대학이 열렸다. 강의 제목은 ‘하느님의 종 81위’였다. 이날 강의에 나선 한국교회사연구소 이민석(대건 안드레아) 연구원은 근·현대 신앙의 증인 중 주로 한국전쟁 때 피랍 후 순교하였거나 행방불명된 분들의 약전을 소개하며 이분들의 시복심사 통과와 시복 확정을 간절히 소망했다.

그 중 기억에 남은 두 분이 있다. 만주 지역에 파견된 최초 한국인 사제, 김선영 요셉 신부(1898-1974). 다른 분들과 활동 시기는 다소 달랐지만 만주지역에 파견되었다가 중국 공산당이 저지른 갖은 박해로 희생되신 분이다. 15년간 형무소 생활, 8년간 강제노역 생활로 등 23년간을 극악한 무리들의 비인간적 행위로 고생하다 이국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중국 애국교회 가입을 완강히 거부하며 가톨릭의 정통성을 수호한 김선영 신부님의 하늘나라 입성을 확신한다.

몬시뇰(Monsignor) 자리에 세 번 오른 패트릭 번 주교(Patrick J. Byrne. 1888-1950). 미국 볼티모어교구 사제로 서품 받은 후 메리놀 외방 전교회로 이적한 번 신부는 1922년 교황청이 평안도 포교권을 메리놀회에 맡기자, 1923년 평양에 들어와 평양지목구 설립을 준비했다. 이후 본당은 물론 각종 학교, 시약소, 고아원 등 교육 시설과 복지 기관을 설립했다. 1927년 3월 서울대목구로부터 평양지목구가 분리·설정되자 초대 평양지목구장(Prefect Apostolic of Pyongyang)으로 번 신부가 임명됐다. 지목구장은 고위 성직자 자리이므로 번 신부에게 몬시뇰(Monsignor)이라는 경칭이 처음으로 주어졌다.

당시 신생 선교회인 메리놀회 창립자 월시(James A. Walsh. 1867-1936) 신부는 동양선교 의욕이 넘쳐있었으며 메리놀회의 동양 선교지 물색에 진력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메리놀회는 중국과 한국에 이어 일본에도 진출할 계획을 세웠으며, 이를 위해 번 신부가 1935년 일본에 들어가게 됐다. 번 신부는 2년 후인 1937년 교토지목구장(Prefect Apostolic of Kyoto)에 서임되며 그는 두 번째 몬시뇰 경칭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당시 식민지를 팽창해 나가던 일본은 전쟁을 준비하며 미국을 적성국으로 간주했고, 일본에 주재하던 모든 적성국 국민은 감금되거나 추방됐다. 이런 정세의 흐름 속에 번 신부는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의 활동을 접고 본국으로 귀국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해방되자, 1947년 교황청은 한국을 가장 잘 이해하는 번 신부를 주한 교황순찰사(Apostolic Visitor to Korea)로 임명했고, 번 신부는 세 번째 몬시뇰 경칭을 받게 됐다. 2년이 지난 1949년 번 신부는 초대 주한 교황사절(Apostolic Delegate)이 되며 주교품을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발발한 6․25전쟁은 번 신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당시 번 주교는 일본으로 대피할 기회도 있었지만 사목지 한국교회와 한국인 양떼들을 지킨다는 사제의 책임감으로 서울에 남았다. 남침한 북한 정권에 의해 1950년 7월 11일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체포되고 인민재판을 거쳐 사형선고를 받았다. 1950년 7월 19일 북한군에 의해 평양으로 이송된 후, 악랄하기로 유명한 ‘죽음의 행진’(Death March. 1950년 10월 31일-11월 9일)을 겪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11월 25일 중강진 부근 하창리 수용소에서 주님의 품에 안겼다. 번 주교는 선종하던 날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퀸란(Thomas F. Quinlan S.S.C., D.D. 1896-1970) 신부에게 유언을 남겼다.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저의 소원이었는데 좋으신 하느님께서 저에게 이런 은총을 주셨습니다.”

11월 마지막 금요일은 양떼들 곁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치신 하느님의 종 번 주교의 일흔 두 번째 기일이다. 이국땅에서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의 영혼구원을 갈구했던 번 주교는 명예와 헌신, 그리고 희생의 전범을 보였다. 마음 깊은 애정으로 번 주교와 김선영 신부를 추모하며, 모든 ‘하느님의 종 81위’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천강우 프란치스코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