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네덜란드 주재 교황대사 부임하는 장인남 대주교

정리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2-11-08 수정일 2022-11-09 발행일 2022-11-13 제 3318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지원받던 한국교회, 이제는 공헌자… 세계교회에 큰 역할 기대”
세계 속 한국 역할
복음적 가치 증거하는 삶으로
아시아·세계교회에 기여할 것

세상 속 그리스도인 역할은
물질적 풍요로움 얻게 될수록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시고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 살아야

장인남 대주교는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에 공헌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며 신자들에게 “스스로가 복음적 가치를 실천하고 주님의 일꾼으로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을 당부했다. 사진 박원희 기자

유일한 한국인 교황대사인 장인남(바오로) 대주교는 교황청 외교관으로 37년, 교황대사로 20년을 봉직해 왔다. 지난 7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 대주교를 네덜란드 주재 교황대사로 임명했다. 네덜란드는 장 대주교의 마지막 임지가 될 전망이다.

장 대주교는 2002년 10월 방글라데시 주재 교황대사가 된 이래 우간다,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교회의 일꾼은 주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 본분’이라는 마음으로 교황대사 직분을 수행해 왔다.

11월 17일 네덜란드에 부임하기 전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장 대주교를 만나 그동안 교황대사로 일해 온 소회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 교황대사로서 바라본 한국교회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대담: 장병일(바오로) 편집국장

■ 일시: 2022년 10월 27일

■ 장소: 인천 강화군 강화꽃동네 교황프란치스코센터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귀한 시간 내어 주신 대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1985년 교황청 외교관으로 첫발을 내디딘 후 37년째 임무를 수행하고 계십니다. 교황대사로서는 20주년을 맞이하셨습니다. 외교관으로서, 교황대사로서 가진 소명이 무엇인지, 또 그 소명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또 오랫동안 교황청 외교관으로 봉직해 온 소회도 듣고 싶습니다.

▲장인남 대주교(이하 장 대주교): 교황청 외교관 역할은 지역교회에 대한 봉사입니다. 현지 교구와 교회 상황을 교황청에 알리고, 교황청의 지시사항을 지역교회에 전달합니다. 교구장 공석 시에는 새 교구장 임명에도 참여합니다.

교황청 외교관 직무는 특수사목에 해당합니다.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본당사목과는 다릅니다. 37년 넘게 교황청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무엇보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을 성직자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까지 사제로서, 주교로서 잘 살 수 있게 기도해 주신 형님 장인산(베르나르도) 신부님과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 국장: 부임하셨던 각 국가마다 나름의 상황들이 있겠지만, 네덜란드 교황대사로 임명되기 직전에 계셨던 미얀마에 대해선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톨릭신문도 미얀마 관련 도움 호소 기사나 사설 등을 통해 국내 신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 미얀마는 어떤 상황인지요. 또 한국교회가 어떻게 관심을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입니다.

▲장 대주교: 미얀마 상황은 극도로 어렵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서 그동안 나라를 이끌었던 아웅산 수치 정부가 군부에 의해 쫓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거리에 나가 평화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군부의 무차별 사격으로 많은 이들이 사망했습니다. 군부를 반대하는 이들이 사는 지역에 전투기가 와서 포격하는 일이 거의 매일 벌어졌습니다. 제가 미얀마를 떠나기 전까지 사망자가 1700명이 넘었고, 군부에 의해 감옥에 갇힌 정치인은 1만 명을 넘었습니다. 군부의 무차별 폭격을 피해서 농토를 버리고 집을 떠난 국내 이주민도 8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선교하시는 한국 수녀님한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 수녀님들이 나가 계신 미얀마 로이코교구 수녀원에 군인들이 들어와서 수녀원을 부수고 수색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미얀마 양곤대교구장 찰스 마웅 보 추기경님이 교회를 잘 이끌어 가고 계시고, 사회에 대한 적극적 발언도 자주 하십니다. 무장 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위해 일하자는 선언문도 여러 번 발표하셨고, 국제사회에도 미얀마를 도와 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우리나라도 군부 독재를 겪다가 주님의 도우심으로 민주국가가 됐기 때문에 미얀마 상황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서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태국 교황대사관을 통해서 여러 번 도와주셨습니다. 도와주신 한국 주교님들, 서울대교구,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에 감사드립니다.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미얀마 사태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기도하자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제까지 태국 교황대사관에서 미얀마교회를 담당해 왔지만, 금년에는 교황님께서 미얀마 주교님들 요청을 받아들이셔서 미얀마 교황대사관에 참사관 신부님이 상주 외교관으로 가게 됐습니다.

10월 27일 강화꽃동네 교황프란치스코센터에서 대담하고 있는 장인남 대주교(오른쪽)와 장병일 편집국장. 사진 박원희 기자

-장 국장: 한국교회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교사 파견이나 세계 곳곳의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지원 등 한국교회에 대한 주문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장 대주교: 지난 9월 초에 3년마다 교황청에서 열리는 교황대사 회의에 참석해 한 주간 모임을 했습니다. 교황청 재무담당 책임자인 예수회 신부님이 와서 교황청 재무사정에 대해 교황대사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코로나19로 교황청 재정이 많이 어렵다고 하는데 미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어 한국교회가 교황청 재정을 지원하는 5대 교회라고 했고 ‘공헌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제가 1979년 로마로 유학 갈 때 한국교회는 교황청에서 지원받던 교회였습니다. 이제 교황청에 지원하는 나라, 공헌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한국교회는 유일하게 평신도 주도로 신앙이 들어왔고, 독특한 선교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한국 신자들이 교회에 대한 사랑이 크다는 걸 느낍니다. 너그럽게 헌금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한국교회의 자랑입니다.

유럽교회가 세계교회를 이끌다가 세속화와 물질적, 개인적 생활방식으로 인해 예전의 지도적인 위치를 잃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한국교회, 아시아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에 참석한 아시아 주교님들의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아시아교회가 세계교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였습니다. 아시아인들은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족 간 유대와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큽니다.

한국은 가톨릭 신자 수가 전체 인구의 10%를 넘습니다.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에 공헌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복음적 가치를 실천하고 주님의 일꾼으로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장 국장: 장 대주교님이 이번에 부임하시는 네덜란드는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 ‘튤립의 나라’, ‘히딩크 등 축구로 유명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덜란드 가톨릭교회 현황 등 네덜란드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장 대주교: 네덜란드는 저에게 아직 생소한 나라입니다. 아직 못 가 보았습니다. 네덜란드에는 7개 교구가 있습니다. 여기에 군종교구가 있고, 대교구는 1개 있습니다. 16개 교구에 대교구가 3개 있는 한국교회에 비하면 작은 교회입니다. 네덜란드 1700만 인구 중 신앙인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비율은 49.3%입니다. 다른 말로 50% 넘는 이들이 신앙 없이, 종교 없이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각 종교 분포는 가톨릭이 22%, 개신교가 10%, 이슬람교가 5% 정도 됩니다.

네덜란드는 극도로 세속화된 사회입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산업과 비즈니스가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나라입니다. ‘돈이 최고다’라는 사고로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신앙인 입장에서 보면 반생명, 반가족 제도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낙태를 허용하는 법이 일찍이 제정된 나라이고, 안락사도 인정합니다. 동성혼도 다른 나라보다 먼저 인정된 곳입니다. 말하자면 반인간적, 반교회적 가치면에서 선두로 나가는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제·수도성소자도 말할 수 없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에 신앙적으로 살 때는 전 세계에 선교사를 보내는 선교사의 고향 같은 나라였지만 지금은 걱정이 많이 됩니다. 네덜란드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장 국장: 황인제 몬시뇰(토마스 아퀴나스·대전교구)에 이어 정다운 신부(요한 바오로·서울대교구)도 교황청 외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첫 한국인 교황청 외교관이셨던 대주교님께서 이러한 후배 사제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교황청 외교관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후배 사제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장 대주교: 외교관 생활 30년 후에 후배 신부님들이 탄생해서 기쁩니다. 황인제 몬시뇰은 5년째 교황청 외교관 생활을 하다 벨기에에 발령받았습니다. 정다운 신부는 4년째 외교관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황 몬시뇰은 제가 벨기에 옆 네덜란드로 간다고 하니까 좋아하며 놀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후배 신부들이 외교관 생활에 잘 적응하고 웃어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서 기쁩니다. 교황청 외교관들에게도 십자가가 항상 있습니다. 후배 신부들이 직무 중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고 사제로서 기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장 국장: 앞으로 대주교님의 교황대사로서, 사제로서의 계획, 혹 퇴임 후 계획도 여쭤 보고 싶습니다. 보편교회 안에서 오랜 교황대사 경험을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장 대주교: 사제의 삶은 주님의 손에 맡겨진 삶입니다. 미래의 삶에 대한 계획은 없습니다. 제가 2년 후에 정년이 돼서 퇴임하게 되면 출신 교구인 청주교구에 돌아가서 조용히 책 읽으면서 지내려고 합니다. 저의 교황대사 경험이 교회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나눠야 하는데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대담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가톨릭신문사 사장 김문상 신부, 장인남 대주교, 청주교구 장인산 신부, 가톨릭신문사 장병일 편집국장(왼쪽부터). 사진 박원희 기자

-장 국장: 코로나19, 꼬여만 가는 정치, 침체되고 있는 경제, 가치관의 부재 등으로 한국사회가 혼란스럽고, 세상살이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상 속의 빛’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에 대해 대주교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장 대주교: 저는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놀랍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만 해도 나라가 어려웠습니다. 점심을 못 싸 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에서도 경제대국에 속하고, 아시아에서는 모든 이가 경탄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제가 일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 위상이 올라가니 저도 일하면서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동남아 주민들도 BTS(방탄소년단)는 다 압니다. 제가 그쪽 언어는 못하지만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하면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체험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과거보다 잘 사는 생활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살며 주님을 잃고 신앙에서 내리막길을 걷지만,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그리스도인이 돼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신다’는 정신이 우리 삶의 맥락이 돼야 합니다. 혼란스런 세상, 어려움과 위기가 항상 계속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 정신으로 무장하고 참된 인간적 가치로 사는 것이 우리 삶에 첫 바탕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바탕 안에서 우리 눈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 우리 이웃인 이주노동자 등과 함께하며 주님을 모시고 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 국장: 질문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교황님 북한 방문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장 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최근에도 북한 방문 의향을 공식적으로 말씀하셨고, 항상 북한에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2019년 교황님의 태국 사목방문 때 제가 3박4일 동안 태국 교황대사관에 교황님을 모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제가 한국인이어서인지 그때 교황님께서 “나는 북한에서 오라고만 하면 언제든지 간다”는 말씀을 저한테도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계십니다.

2003년 1월 6일 로마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대주교 서품식 후 정진석 추기경(왼쪽), 장봉훈 주교(오른쪽)와 손을 맞잡고 축하 인사를 나누고 있는 장인남 대주교.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정리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