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사망 원인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11-16 수정일 2022-11-16 발행일 2022-11-20 제 331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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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의 이력을 돌아보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짧은 세월이지만 경험했던 일들이 오늘날의 여러 현상을 바라보거나 묵상을 함에 있어 유용한 측면들도 있습니다.

저의 첫 직업은 노사관계나 노무관리를 다루는 ‘공인노무사’였습니다. 관련 일을 하던 중 남북 간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과거와는 다른 노사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즉 우리나라에서의 노사관계는 우리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발생하지만 남북경제협력이 이뤄지는 공간에서는 우리 기업과 북한 노동자와의 이질적인 만남이 생깁니다. 그로 인해 갈등이 생길 수도 있어 미리 경험과 사례를 축적하고자 개성공단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에서 남북 간의 노사문제를 처리하다 보니 제가 알고 있던 북한에 대한 지식이 참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관련 학업을 통해 오늘에 이르게 됐습니다.

최근 남북관계를 보면 2018년 4·27 정상간 합의 이전의 첨예한 대립 시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됩니다. 특히 어렵사리 합의했던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군사적 충돌이 재연되고 한반도의 긴장이 급속도로 올라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남북관계를 바라보면서 제가 공인노무사 일을 할 때 자주 접하곤 했던 ‘사망진단서’가 생각났습니다. 사망진단서에는 사망 원인이 선행사인, 중간선행사인, 직접사인으로 구분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혈압을 앓고 있던 환자가 뇌출혈이 발생해 심정지로 사망했다면 고혈압은 선행사인이고, 뇌출혈은 중간선행사인이며, 심정지는 직접사인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심정지로 사망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혈압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행사인을 살펴보지 못하고 직접사인인 심정지만 보려 한다면 문제해결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저는 오늘날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선행사인은 애써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직접사인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왜 심장이 멈추었느냐?”고 소리만 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정작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그 선행사인을 살펴야 하는데 말입니다.

조금은 냉정하게 선행원인은 무엇이었는지,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살펴보는 식별의 힘이 필요해 보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