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무덤 앞에서 / 안봉환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
입력일 2022-11-22 수정일 2022-11-22 발행일 2022-11-27 제 332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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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정한 위령 성월을 맞이하여 11월 내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자칫 게을러지고 나태해지기 쉬운 신앙심을 올바로 하기 위해 종종 성직자 묘지와 순교자 묘지를 방문하여 그분들께 전구하고 있다. 오색찬란하게 물든 숲길을 걸어 묘지로 올라간다. 바람이 불자 가지에 달랑 붙어있던 마른 잎사귀들이 하나둘씩 살포시 발 앞에 떨어진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문득, 살아계신 부모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리시고 나 혼자 남는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 늙지 않고 살아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늘 마음을 졸였다. 하지만 세월의 강물은 가만두지 않고 부모님을 휩쓸고 갔다. 지상 생활을 마무리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신 부모님은 이제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다.”(히브 9,27) 출생에는 순번이 있어도 죽음에는 순번이 따로 있지 않다.

“얘야, 죽은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처럼 애도를 시작하여라. (중략) 네 마음을 슬픔에 넘기지 마라. 슬픔을 멀리하고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라.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너는 죽은 이를 돕지 못하고 너 자신만 상하게 할 뿐이다. 그의 운명을 돌이켜 보며 네 운명도 그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어제는 그의 차례요 오늘은 네 차례다(mihi heri, et tibi hodie). 죽은 이는 이제 안식을 누리고 있으니 그에 대한 추억만을 남겨 두고 그의 영이 떠나갔으니 그에 대하여 편안한 마음을 가져라.”(집회 38,16ㄱ.20-23)

드디어 성직자 묘지에 도착했다. 수명을 다하고 세상을 떠난 많은 선배 사제들과 젊은 나이에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하느님의 품에 안긴 후배 사제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였다. 신앙인에게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인생의 끝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음을 더이상 희망이 없는 인생의 끝, 삶의 종결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이들이 묻힌 공동묘지를 ‘죽은 자의 도시’라는 개념을 취하여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라고 불렀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에 곧 깨어날 수 있도록 잠시 잠들어 있는 상태로 여겼다. 그리하여 죽은 신자들이 묻혀 있는 공동묘지를 ‘침실, 휴게소’라는 개념을 취하여 체메테리움(coemeterium)이라고 불렀다. 신약성경에서는 잠자고 있는 상태로 죽음을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중략)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마태 27,52) “예수님께서 (중략)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요한 11,9ㄱ.11-12)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중략)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스테파노는 이 말을 하고 잠들었다.”(사도 7,60)

흙으로 만든 피조물인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생명의 원천이신 당신께로 부르신다. “죽음은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13항). 단 한 번뿐인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는 죽음을 잘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 죽게 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장례 미사」, 위령 감사송 1)될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전주교구 문정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