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영화 ‘탄생’을 보고

김선필 베드로(제주 노형본당)
입력일 2023-01-04 수정일 2023-01-04 발행일 2023-01-08 제 3326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영화 ‘아바타’, ‘영웅’과 같은 기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할 예정이어서, ‘탄생’을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급하게 ‘탄생’을 보러 극장에 다녀왔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영화 ‘탄생’은 김대건 신부님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최초의 한국인 신부님이라는 타이틀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사실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잘 몰랐다. 이전에 그분의 서한집을 읽으면서 다소 지루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분의 삶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오늘 비로소 그분 삶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서한을 다시 읽으면, 그분의 삶이 더욱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특별히 감동을 받은 부분은 사제들이 이 땅에 들어오던 순간, 이 땅의 신자들을 위해 희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땅의 모든 사제들이 온전히 김대건 신부님과 선배 사제들의 모범을 따라 살아주시길 기도드린다.

이 영화는 김대건 신부님을 다루고 있지만, 초기 한국교회 신자들의 절절한 신앙을 함께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사제를 우리나라에 모셔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 그들만이 아니다. 나에게는 영화 속 은이공소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교우촌의 이름 모를 아낙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안도 강화도에 살다가 박해를 피해 당진을 거쳐 서산까지 도망쳐야 했다. 우리 할아버지만 해도 직접 구워낸 옹기를 서산 읍내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가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신공을 바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초기교회 신자들의 삶이 그렇게 이어져 온 것이었으리라. 그분들의 신앙 덕분에 오늘의 나와 한국 천주교회가 존재하는 것이겠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아쉬움과 막막함이 따라왔다. 아쉬움은 그렇게 소중한 사제직을 이 생에서는 더 이상 소망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김대건 신부님 역할을 맡은 배우 윤시윤씨가 워낙 연기를 잘해서일까? 저 숭고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만들어낸 순간적인 아쉬움이었다.

막막함은 김대건 신부님 같은 사제도, 초기교회 신자들 같은 순교자도 아니면서, 내가 어떻게 저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냐는 막막함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생각이 이어졌다. 내 삶의 순간순간을 저들과 같이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저들처럼 드라마틱하게 살아갈 수는 없어도, 저들과 같이 매 순간 천주님을 생각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그것은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 걸으신 작은 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이름 모를 작은 꽃이 되고 싶어 하셨다. 그분은 작은 꽃들이 배경이 되어 주어야 큰 꽃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듯, 우리가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희생과 선행을 바칠 때 예수님께서 더 큰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고 보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름 모를 평범한 신자들이 있었기에, 김대건이라는 큰 성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보면 과장된 것일까.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한 작은 꽃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저 영화 속 인물들이 그토록 바랐던 신앙인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저분들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안타깝지만 대형 상업 영화들이 스크린을 점령하면서, 영화 ‘탄생’은 더 이상 극장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은 어서 우리 신앙의 선조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시길 권해 드린다.

김선필 베드로(제주 노형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