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선종] 특별기고- 교황님을 그리워하며

한홍순 토마스,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입력일 2023-01-10 수정일 2023-01-10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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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해맑게 웃어주셨던 교황님이 그립습니다 

1987년 세계주교시노드서 첫 만남
해박한 학식·탁월한 능변에 늘 감탄
스스로 교황직 놓는 ‘혁명가’이기도

2012년 10월 11일 신앙의 해 개막미사 중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한홍순 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에게 교황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겉으로 보기엔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는 맥주와 음악을 좋아하고, 항상 밝게 웃으며 주위 사람을 챙기는 따뜻한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베네딕토 16세 재임 시절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던 한홍순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특별기고를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본다.

내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님을 처음 뵌 것은 이분이 교황으로 선출되시기 훨씬 전 1987년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에서였다. 평신도를 주제로 한 달 가량 진행된 이 주교시노드에 나는 옵서버로 참석해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님을 비롯한 교황청과 세계 여러 나라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과 교류하는 은총의 기회를 가졌다. 라칭거 추기경님은 워낙 우리 시대 최고로 손꼽히는 신학자이셔서 나는 존경심 어린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곤 하였다.

그 후 나는 1998년 아시아특별주교시노드, 2008년 세계주교시노드, 그 밖의 여러 기회에 교황님을 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1992년 출판된 이듬해에 교황청 평신도평의회가 편찬위원장 라칭거 추기경을 초대해 위원들과 가진 비공개 토론회이다. 당시 나는 이 교리서가 프랑스어로 초판이 출판되자마자 그 내용을 간추려 ‘가톨릭신문’에 연재하고 있던 터라 다른 위원들보다 구체적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라칭거 추기경님께 이 교리서가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려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였다.

추기경님은 이에 대해 그것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그대로 둔 것이며 나라마다 사정에 따라 달리 적용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답변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이 교리서는 최종본인 라틴어판에서 사형제도를 분명하게 반대하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

탁월한 능변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해박한 학식을 쌓은 분이지만 탁월한 능변가이기도 하셨다. 나는 아직 그분 같은 능변가를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원고도 보지 않고 저렇게 논리적으로도 명쾌하게 자신의 논지를 막힘 없이 펼 수 있을까?”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경탄을 금할 길 없었다.

신임장을 제정하며

2010년 가을 교황청 대사로 신임장을 제정할 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을 독대하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어서였던지 교황님은 내 손목을 다정하게 붙들고 자리에 안내해 주시고 10분 정도로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가며 말씀을 나눠 주셨다. 이 독대 중에는 부담스러운 주제는 꺼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어서 나는 교황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교황님, 한국교회에서는 미사를 마치며 ‘미사가 끝났으니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하지 않고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교황님께서는 “그렇지요. 미사는 신자들을 선교 현장에 파견하는 것이지요”라고 하셨다. 뒤이어 나는 교황님께 세계 각국 교회도 한국교회처럼 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시기를 청하였고 교황님은 긍정적 언질을 주셨다.

마드리드 세계 청년 대회: 2011년

2011년 8월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세계청년대회 전야 철야기도 모임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치며 폭우가 쏟아져 단상의 장식이 일부 무너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워낙 폭우에 바람이 거세어서 우산도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교황님 곁에 있던 전례 담당자들이 교황님께 비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잠시 자리를 옮기도록 말씀 드렸지만 교황님께서는 젊은이들과 함께 하고자 흰 우산을 받고 그대로 자리를 지키셨다. 성체 조배는 얼마 동안 중단됐고 젊은이들은 빗속에서도 박수치고 노래하였다.

이후 비에 흠뻑 젖은 채 기도는 계속됐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에도 자기들과 함께하는 교황님에게서 젊은이들이 굳건한 일체감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2011년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손을 흔들며 청년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음악 애호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고전 음악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시며 평소에 틈만 나면 피아노를 즐겨 연주하는 수준급 피아니스트이시기도 해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교향악단들이 바티칸에 와서 교황님께 헌정하는 음악회가 비교적 자주 열리곤 했다.

그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여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음악의 명연주를 감상하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주회가 끝날 때마다 교황님이 들려주시는 그날 연주된 곡들에 대한 영적인 해설은 참으로 음악이 어떻게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 주는지 깨우쳐 주며 그날의 명연주를 더욱 빛나게 하는 금상첨화와도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 일반 알현

교황직을 물러나시기 전 마지막 수요일 정례 일반 알현은 여전히 마음속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원래 대사들은 일반 알현에 초청되지 않지만 마지막 알현이기 때문에 특별히 초청 받아 참석했다. 교황님께서 훈화 중에 “교회라는 배는 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이 가라앉게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 배를 이끌어 가는 것은 바로 그분이시지요”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이날 참석한 여러 추기경은 흐르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고 나에게 털어 놓기도 하였다.

교황궁 떠나시던 날 오후 5시 산 다마소 광장

나는 정말로 우연히 교황직 종료 세 시간 전 교황궁 앞 산 다마소 광장에서 로마 근교 카스텔간돌포의 교황 별장으로 떠나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건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교황궁에서 근무하는 최측근 추기경, 대주교, 몬시뇰 등 열대여섯 분이 한 분씩 교황님께 작별 인사를 드리며 하나 같이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데 정작 교황님은 편안하게 미소 지으며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셨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미소를 머금고 평온한 모습으로 시종일관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교황님의 그러한 모습, 참으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님이 전용차로 광장을 떠나신 뒤에 주위를 살펴보니 쉰 명쯤 되는 사람 중에서 교황청 직원이 아닌 사람은, 더욱이 대사는 나 하나뿐이었다. 어떤 의미에선 살아있는 교황의 장례식장과도 같았던 현장에서 나는 말하자면 유일하게 외교단을 대표하여, 그리고 비유럽권 평신도들을 대표하여 교황님을 배웅한 셈이었다.

자신을 ‘주님 포도원의 하찮고 작은 일꾼’이라고 일컬으며 ‘진리의 협력자’(3요한 1,8)로서 베드로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신 분, 오로지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한 사랑으로 교황직까지 스스로 내려놓으신 분, 어떤 의미에서 우리 시대 진정한 혁명가이신 분, 뵐 때마다 늘 한결같이 해맑게 웃으시며 대해 주시던 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그리워지는 건 나만이 아니리라.

한홍순 토마스,전 주교황청 한국대사